이번 스타킹 최면에서 나는 최면의 파워를 보여주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나는 10여년 이상동안 나의 최면능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였으며
특히 순간최면법을 익히고 활용하며 가르치기 위한 노력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러니까 내가 방송에서 보인 순간최면법은 어느날 갑자기 된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의
나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최면이 신기한 것으로 비치는 과정에서 그것은 마치 매직과 같은 것으로 생각되고 그래서 과학성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이번 방송에서도 최면은 과학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는 식의 자막이 몇번 나갔고
마지막에 나온 교육심리학 전공의 모교수님은 최면의 과학성을 부정하는 멘트를 하셨다.
그분은 프로이트를 인용하면서 무의식 세계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시면서 최면의 과학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였다. 나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유감스런 일이다. 기껏 최면을 다루어놓고 최면의 과학성을 부정하면
나는 무엇이 되며 또 프로그램은 어떻게 되는가? 아마도 제작진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그렇게 자막처리를
한 것으로 이해는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한다.
한 마디로 내 입장에서는 최면은 과학이며 학문적 인정을 받고 있다고 분명하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대부분의 주류 학문계에서는 이 점에 대해서 동의를 하지 않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그것은 그 분들이 제대로 알지 못해서 보이는 반응일 뿐이기 때문에 나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럴수록 나는 최면의 과학성과 학문성에 대해서 더욱 열심히 알릴 필요성을 느낀다.
나는 현재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한 동방대학원대학교에서 NLP최면학 전공의 교수로서 가르치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최면학을 대학원 석사와 박사과정에서 개설하여 가르치는 학교가 바로 동방대학원대학교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최면학을 제도권대학교(대학원)에서 가르치는 교수다. 나는 그런 점에서
아주 큰 자부심을 느낀다.
이런 점들을 전제로 하면서 이제 과연 과학적, 학문적 타당성이 있을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최면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많은 관심을 보이지만
실제로 최면을 접해볼 수 있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최면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많다.
특히 TV를 비롯한 대중 매체에서 최면을 오락 및 호기심의 차원에서 취급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최면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갖기가 쉽다. 그것은 이번 스타킹의 경우도 마찬가지며 그런 의미에서
나의 책임도 크기 때문에 이런 글을 통해서 시청자분들에게 최면을 제대로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최면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면서도 정작 최면의 과학성이나 학문성에 대해서는 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오해되어온 역사를 갖고 있다.
특히 그것은 “최면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오면서 이름에서 “술”자가 주는 뉘앙스 때문에
더욱 그렇게 인식이 되어온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자는 사람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최면술”이라고 부르지 말기를 권하고 있다.
대신에 최면, 최면법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일반인의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최면은 서양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의학과 심리학, 교육학 분야에서 학문적인 연구 대상이 된지 오래며 치료적 수단으로서도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볼 때 최면의 학문적 가치에 대해서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일반인들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의 벽이 두껍고, 전문가의 수가 부족한 관계로
현실적으로 최면에 대해서 제대로 접근하기가 어려움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면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면에서 최면을 검토를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과학으로서의 최면
오늘날 최면은 학문적인 차원에서 과학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래서 구미 선진국에서는 정규 의과대학이나 심리학과 등지에서 타당한 치료법으로
가르쳐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 실험 연구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관련학회의 활동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의학계와 심리학계에서 최면에 대한 연구는
특히 1960년대를 전후하여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크게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1955년, 미국에서는 1958년에 의학계로부터 각각 치료적 가치를 인정받은 최면은 1960년에
와서 미국의 심리학계에서도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심리학회 (APA)에서는 심리최면 분과를
두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전인 195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는 미국에서 최면 관련 전문 학회 및 단체가
발족하여 전문적인 최면연구를 위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최면 자체의 역사를 따지자면 약 5,000여년 이전인 고대 이집트,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현대적인 의미의 최면의 역사는 약 200여년 전인 18세기 오스트리아의
정신과의사였던 메즈머 (Franz Anton Mesmer)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최면에 대한 과학적 실험의 역사는 19세기에 시작되었다고 볼 때 최면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또한 1930년대에는 미국의 심리학자 헐(Hull)에 의해 엄격한 통제하의 최면 실험이 이루어짐으로써
과학으로서의 최면은 보다 굳건한 토대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심리학자인 힐가드(Hilgard)는
또 다른 차원에서 최면실험을 하면서 최면의 학문성과 과학성을 확립하는데 기여하였다.
오늘날 미국의 주요의과대학에서는 최면의학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전공이 개설되어 있으며 실제로
최면의학전문의 제도가 발달하여 있다.
20세기 이전까지 유럽지역에서 번창하던 최면의 역사는 프로이트가 자신의 심리치료 체계인
정신분석학을 개발하면서 최면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쇠퇴하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20세기의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최면은
다시 부흥기를 맞아 오늘날 다양한 분야에서 학문적으로 연구될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치료적 목적과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에서 크게 활용되고 있다.
사실, 최면과 최면치료는 과학과 이성적 차원에서 제대로 설명하거나 검증하기 어려운
무의식적 현상을 취급하기에 부분적으로 과학성의 차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다양한 실험과 조사를 통한 과학적 검증을 거친 많은 수의 학위논문을 포함하여
다양한 학술적인 논문이 발표된 것도 사실이다. 나도 여러 편의 학술논문과 최면에 관한
여러 권의 저서와 역서를 출판하였다.
이제 최면은 더 이상 ‘이상한 마술과 같은 것’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서 타당한 치료기법으로서,
인간의 삶의 질에 기여할 수 있는 당당한 심리학의 주제로서,
훌륭한 교육적 수단으로서 제대로 연구되고 활용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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