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을 생각하면 누구나 잠을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최면상태는 잠자는 상태와 같아서
아무 것도 모를 것이며 시키는 대로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최면은 잠자는 상태와는 다르다.
오히려 최면에서는 의식이 깨어 있어서 주변을 다 인식하고 각성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는
스스로 최면에 걸리지 않았다고 믿는다. 남들이 보기에는 잠자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최면에서 깨더라도 최면중에 있었던 일을 다 기억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최면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도록 하자.
두 가지 종류의 최면 개념
최면에는 두 가지, 즉 넓은 의미의 최면 개념도 있고 좁은 의미의 개념도 있다.
영화나 TV에서 볼 수 있는 최면의 장면은 좁은 의미의, 전통적 의미의 최면 개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어시시한 분위기가 나는 어두운 방에서 최면유도를 받고
최면에 걸린 사람은 마치 인사불성의 상태에서 아무 것도 모를 것 같고,
최면사가 시키는 대로 할 것이며 최면동안에 있었던 일을 최면에서 깨어난 후에도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최면의 개념으로 봤을 때는 우리가 일상 생활 전반에 걸쳐서
최면적 경험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좁은 의미의 최면 개념은 넓은 의미의 개념에 비해서 깊은 최면상태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이 최면의 모두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최면의 형태는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재미있는 TV를 시청하거나 라디오를 들을 때,
또는 소설을 읽을 때는 그 일에 ‘정신이 빠져서’ 다른 일은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 경우에 우리는 ‘무의식적’ 상태에서 어떤 일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최면경험의 한 예라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최면경험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최면의 종류
최면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전통최면과 비전통최면이다.
전통최면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있어왔다고 할 수 있지만 학문적인 입장에서 시작된 최면의 역사는
18세기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19세기말에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창시하기 전까지 유럽에서
크게 성행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최면을 그만 두고 정신분석학을 창시하면서부터
최면의 ‘암흑기’가 시작되어 50년간 지속되었다.
전통최면은 흔히 영화나 TV 등에서 어두운 조명아래 긴 의자나 소파에 눕혀놓고 추와 같은 것을
흔들거나 긴 유도문을 말함으로써 최면을 거는 모습과 연관된다.
그러나 비전통최면은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
밀턴 에릭슨이란 정신과의사이자 심리학자는 1900년대 중반 이후부터 비전통적 최면
즉 에릭슨최면의 시대를 열었다. 이때부터 최면의 학문성 또한 크게 진전되어 1950~1960년대에
영국과 미국의 의학회, 미국심리학회 등의 학회에서 최면의 학문성이 인정되었다. 그 후에
미국의 주요 의과대학에서는 최면의학 전공을 두고 최면으로 치료를 하고 심지어는 수술까지 시행하고 있다.
특히 에릭슨최면에서는 굳이 눈을 감기지 않고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서도 최면을 걸고, 그 상태에서 치료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대표적으로 악수를 하는 방식으로 최면을 거는 순간최면법과 같은 것을
많이 발달시켰다.
최면에는 또한 임상최면과 교육최면이 있다. 임상최면은 치료를 위한 최면이며 흔히 최면치료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최면은 학습과 교육을 위한 최면이다. 이번에 스타킹최면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바로
교육최면의 한 형태이다. 기억력, 집중력을 높이고 공부를 잘 하게 해주는 최면법이다.
마지막으로 무대최면 또는 쇼최면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흥행과 쇼를 위하여 이루어지는 최면을 말한다.
서양 선진국에서는 매직쇼와 마찬가지로 이미 최면으로 재미있는 쇼를 하는 무대최면이 성행하고 있다.
이 무대최면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시간을 제공하고 아울러 마음이나 무의식의 파워를 실감하게 한다.
최면감수성과 개인차
최면에는 개인차가 있다. 누구나 최면에 잘 걸리는 것이 아니고 최면감수성에 따라 최면에
걸리는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어리거나 젊은 사람들, 특히 연예인과 같이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은 최면에 잘 걸린다. 반면에 사무직에 종사하며 머리를 많이 사용하는 성인들,
이성적이고 의심이 많은 사람들은 최면에 잘 걸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방송에서와 같이 남에게 보여주는 최면을 할 때는 젊은 사람, 특히 연예인과 같이 최면감수성이
높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게 마련이다. 동일한 조건에서 이들은 거의 90퍼센트 이상 최면에 잘 걸리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오히려 90퍼센트 이상 최면에 잘 걸리지 않게 된다.
그런 최면감수성의 문제와 최면의 개인차를 생각할 때 스타킹과 같은 프로그램에서 등장했던 출연진들은
모두가 최면감수성이 높은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래서 그들은 정말로 최면에 잘 걸리게 되어 있다.
따라서 전문가의 입장에서 어차피 최면이 잘 되게 되어 있는 그들을 대상으로 조작을 하거나 짜고 할 필요가
전혀 없다. 특히 앞에서 설명했듯이 에릭슨최면과 같은 경우에는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 곧 바로 최면에 걸며,
특히 순간최면법에서는 정말로 순간적으로 최면을 걸기 때문에 조작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들과 같이 최면감수성이
높은 사람 누구라도 있다면 언제라도 그와 같은, 또는 그 이상의 최면쇼를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을
한 번도 접해 보지 않은 일반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신기하기 짝이 없고 그래서 짜고 했다거나 사기를 친다고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해외사이트에서 무대최면(stage hypnosis)나
최면쇼(hypnosis show)와 같은 검색어로 찾아 들어가면 스타킹에서 본 것과 유사하거나
그 이상으로 쇼킹한 장면을 담은 많은 동영상과 이미지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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