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례

외로움과 우울증

설기문 2009. 3. 4. 11:59

꽤 오래전에 상담을 받았던 내담자는 그 때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었다.

그때의 기억으로 그녀는 중학교 때까지는 최상위 그룹에서 벗어나지를 않을 정도로 공부를 잘 하였고

장래의 슈버이쳐를 꿈 꾸는 모범학생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학교에서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크게 인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았었는데 .......


  그런데, 어떤 연유인지 그녀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한 이후부터는 모든 것이 이전과 달라졌다.

성적인 중위권으로 떨어졌을 뿐 아니라 학교생활에 적응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학교생활에 대해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치 못하고

그냥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외톨이가 되는 길로 자신을 몰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자주 가슴이 답답하고 배가 아프다고 하면서 자주 결석을 하기도 했다.

 때로는 먹은 것을 토해 내기도 하고 거식증을 경험하기도 하여 부모님을 긴장시켰다.

그래서 함께 병원엘 가서 종합적 진단을 받아보았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소견만 들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꾀병을 부린 것도 아니며, 그녀는 진실로 많이 아프고 고통스러웠지만 병명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고민 고민하던 부모님께서 수소문하여 상담을 받으러 오셨던 것이었다.


  그녀의 부모님의 말씀으로는 딸이 공부에 집중하지 않고 컴퓨터에 빠져 있다고 하였다.

새벽까지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느라 숙제도 제대로 못 한 채 학교엘 가게 되고

또 수시로 아프다고 하면서 학교에 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히 부모님들의 걱정은 너무도 커졌다. 그녀는 집안의 장녀이기도 하였지만

중학교 때까지는 모든 면에서 대단한 모범생이었으며 착실한 학교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들이 딸에게 무슨 일 때문에 학교 생활에 흥미를 잃고 학업성적이 부진한지에 대해 아무리 물어보아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가끔씩 눈물을 보이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친구들도 그녀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였다. 부모님들은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으며,

빠듯한 살림 속에서도 착실한 딸아이를 보면서 힘을 얻곤 했었는데 꿈이 사라진 것처럼 여겨지고

이제는 정말 좌절감만 커져 간다는 것이었다.

 

  그 때, 상담을 통해서 밝혀진 내담자의 문제는 뜻밖에도 외로움이었다.

그녀는 중학교 시절에 특목고등학교를 가고 싶어 하였다.

하지만 그녀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그 꿈과 희망을 부모님의 무관심으로 인해 이루지 못하고 버려야만 했다.

그리고 실망과 좌절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녀가 겪고 있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아픔에 대해 부모님들이 충분하게 마음의 위로가 되어준다거나

격려해주는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 오히려 아버지께서 부모의 입장을 헤아려 주지 못하는 딸에 대해

서운해 하시고 못마땅해 하는 눈치를 주었다. 사실 그때 당시에는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딸에게 말 할 수 없는

어려운 집안문제 때문에 몹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딸에게 대해서 제대로 관심을 기울일 수 없었으며

그녀가 의논해 오는 일들에 대해 건성으로 대답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이 그녀에게는 커다란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부모님의 사정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는 딸의 입장에서는

부모님에대한 실망과 괴로움은 너무나 컸기에 차라리 죽고 싶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자신으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자신의 뜻대로 나오지 않음에 대해

스스로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 전혀 알아주거나 이해해주지를 못하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그 이후 그녀는 별로 원하지 않는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고 점차로 학교 생활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수업시간에 몇 가지 까다로운 질문을 하였다는 이유로

선생님으로부터 “시험에 나오지도 않을 것을 가지고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는 말과 함께 비난의 소리를 들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친구들로부터도 장난어린 놀림까지 받았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그녀는 너무도 속상하고 괴로웠다.

이 모든 일들이 부모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해해 주지 않고 무관심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여기게 된 그녀의 입장에서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다 싫어졌다.

부모님도 밉고 선생님이나 친구들까지  모두가 싫었졌다.

이 세상에 아무도 자신의 친구가 되어주거나 자기를 이해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 온 몸에 외로움이 엄습하였다.

그리고 그 외로움 인해 서서히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공부에 대한 집중력도 사라졌다. 말이 없어졌고 멍하니 딴전을 피우거나 거의 많은 시간을 컴퓨터 게임에 몰입하게 되었다.

컴퓨터를 켜고 게임에 집중하는 시간만큼은 자신이 뭔가 능력있는 사람같은 기분이 들었으며,

그 게임에서 이기고 지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고마운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도 그 자체가 즐겁고 정말 중독이 되도록 좋은 것만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그것이 위로가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루라는 길고 지루하고 우울한 시간을 그렇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고...


 그녀는 심층상담을 통해서 자기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던 우울함과 무기력함,

그리고 무엇보다 외로웠던 그 감정에 대한 근원적인 줄기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가족이 함께 하는 자리에서 서로에게 이해를 구하는 마음을 담아 나눌 수 있었다.

그러한 시간을 통해 그녀는 부모님의 애환, 어른으로 살아가는 동안 자녀에게 말 할 수 없는 아픔들에 대해

처음으로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그것을 통해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고 부모를 원망해 온 것에 대해 너무나 안타까워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녀는 죄송하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이며 용서를 빌었는데,

도리어 부모님께서 미안하다는 말로 대답하는 동안 그들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오래 오래 울었다.


통곡의 시간이 끝나고 그들은 모두가 자신의 마음 속에 맺혀있던 응어리를 풀어내었다.

따지고 보면 딸의 아픔 못지 않게 부모님의 아픔도 컸던 것이다.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나면 모든 것이 한결 가벼워지는 법이다.

그들은 서로에게서 받았던 마음의 상처를 서로 치유해 주었다.

상담현장에서 이러한 장면을 만나게 될 때 상담자 역시 가슴 깊은 곳에서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더 이상 그녀는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또 다른 마음의 크고 작은 상처들은

이상할만큼 서로의 사랑과 애정을 확인하는 순간 봄눈 녹듯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 때 이제부터는 열심히 공부하리라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친구들이나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감정마져 자연스럽게, 그럴수도 있지 하며 웃어넘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 상담이 계기가 되어 그녀는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으며 자기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되찾으면서

자기존중감이 높아진 그녀는 공부에도 적극적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컴퓨터 게임을 중단할 정도로 강한 의지와 각오도 새롭게 생기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상담 후 잠깐 전해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오늘 3월 3일 오후, 오래 오래 전의 내담자의 어머니의 방문이 우리를 감격케 했다.

오늘 저녁 무렵 우리는 그녀의 어머니를 통해 그동안의 안부를 전해 들었다.

그녀는 마음의 외로움이 주었던 흔적, 즉 성적부진의 문제들로부터 약 7개월 만에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으며

차츰 중학교 때의 그 우수한 성적을 되찾게 되었으며

지금은 누구 못지 않게 밝고 환한 여고생이 되어 자타가 공인하는 우수한 학생으로써

자신의 맡은 일에 열정과 의욕을 가지고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이 지났지만 고마운 마음이 수시로 들어 그 어머니는 마음을 굳게 먹고 시간을 내어

다시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상담센터를 찾으셨다고 한다.

따님은 예전의 이쁜 딸로 사랑스럽게 잘 성장하고 있다는 자랑을 흐뭇한 얼굴로 하시면서...

원하는 대학에 거뜬히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씀과 함께 대학에 합격하면 아마도

다시 한 번 더 찾아와서 감사를 전하겠다는 말씀을 남기고 떠나셨다.


비가 내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따끈한 한 잔의 커피같은 여운을 남기고 그녀의 어머니는 떠나셨지만

우리 상담센터의 역할과 의무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상담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고마운 그녀의 건강한 고교 생활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