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현장에 지내다 보면 날이 갈수록 마음의 세계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들이 수 십년쯤 쌓이다보면 어느 날 눈이 열려서 그냥 내담자를 바라보기만
해도 뭔가 해결책이 튀어나오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며칠전의 상담사례를 함께 나누어보면서 내가 느끼는 경험을 공유해보려 한다.
수도권에 살고 있는 그는 훤칠한 외모의 부모님과 함께 상담실을 찾았다.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그는 대학원 학생이었는데 문제는 오른쪽 팔이 언제부턴가
마비 증세가 오고 계속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는 것이었다.
병원에 가서 정밀한 진단을 받아 봤지만 별 이상증세를 발견하지 못했으며
의사선생님 역시 고개를 갸웃 갸웃 하셔서 유명하다는 한의원을 전전하던 중
어느 한의원 원장님의 소개로 우리 연구소 상담실로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명문대학 법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합격을 했지만 우선은 사법고시가 급선무여서
지금은 휴학 중이며, 문제의 증상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환경이 쾌적하다고 알려진
꽤 좋은 고시텔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던 중이라고 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부유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으며, 외동아들이기도 했지만 부모님의 총애뿐만 아니라
모든 친척들이 기대를 받으며 착실하게 잘 성장한 청년이었다.
상담신청서를 받아서 살펴보니 팔이나 눈물의 문제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보였다.
때로 내담자들은 함께 온 보호자를 의식하여 자신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기에
우선은 심리검사를 실시했다.
심리검사 결과 그는 대체로 무난한 심리적 상태였지만 스트레스가 대단히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었다.
부모님을 밖에서 기다리도록 하고 본격적인 상담에 들어갔는데
그는 남들에게 말 할 수 없는 심각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그는 일찍 사업을 시작하여 성공을 거두어 경제적으로 대단히 유능한 부모님 아래서 양육되었다.
그가 말을 알아듣고 걸음을 걷기 시작할 때부터 날마다 들었던 말은 “공부 잘 하는 사람이 되라”였다고 한다.
부모님은 경제적으로 대단히 풍요로운 상태였지만 학력에 대해 열등감을 심하게 갖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초등학교 때 부터는 “너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꼭 판사가 되어야한다”는 아버지의 당부를
날마다 들으며 성장했으며 지금도 그의 부모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공부만 해서 꼭 판사가 되라,
돈 벌 생각도 하지 말고 갖고 싶은 것은 뭐든 말하고 그 대신 공부는 꼭 열심히 해라,
너만 판사가 되면 이 부모는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소원이 없다....“
이러한 부담감은 세월을 두고 축적이 된 것 같았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을 다닐 때까지
줄곧 가장 유능하다고 소문난 족집게 과외 교사들의 도움을 받으며 부모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점점 더 가까이 꿈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던 것인데, 고시텔에 들어가서 혼자서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숨 막히는 고시텔의 다른 수험생들의 표정이나 분위기까지 가중되어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침 샤워를 하고 나온 뒤부터 이상하게 오른팔이 마비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왔으며
손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 증세를 느끼기 시작했으며 급히 집으로 연락을 하고 병원을 갔었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상태였으며 또 며칠 후 부터는 눈물이 흐르는 증세까지 합해져서 더욱 힘든 상태가 되었다.
그는 몸이 불편한 것도 문제이지만 그의 부모님의 심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곧 다가 올 시험에 대비해야하는데 아들이 상태가 좋질 않으니 집안은 한순간에 어두운 그림자에 휩싸인 것 같았다.
그의 심정 역시 착잡하기 그지 없음은 물론이었다.
그는 이완이 쉽게 되고 최면에 유도가 잘 되는 내담자였다.
여러 가지 그의 심리적 부담감들을 하나 하나 찾아내고 전문적인 기법들을 적용하여 정리해 나가던 중
그의 심층 속에서 무의식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이 왔다.
결론적으로 그는 공부가 하기 싫었다
그리고 고시텔이 너무 싫었다.
또한 판사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본인의 의식은 판사를 원했지만 무의식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도 실컷 보고 싶었으며,
친구들이 다 한번쯤 떠나는 배낭여행도 해 보고 싶었으며
술도 맘껏 마셔보고 싶고, 자신 역시 사업가가 되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는 요리에도 관심이 있었으며 외식산업에도 관심이 컸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공부해야 했으며 부모님의 수고와 사랑,
그리고 기대감을 져버리면 절대로 안 된다는 책임감 속에 자신을 던져 놓고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무의식이 내담자의 깊은 심리상태를 이해하고 그의 편을 들어 준 결과,
그는 팔을 제대로 못 쓰게 되고 쉬임 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책을 제대로 볼 수가 없는
상태로 그를 몰아간 것이었다.
상담자로서 그에게 이러한 심리적 반응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주자 그는 한참이나 생각을 하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며 뜨거운 눈물을 떨구며 오열했다.
사실 자신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고.......
사실 자신은 정말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부모님께 전해 드리지 못하고 한없이 부모에 의해
끌려다니는 자신이 너무 싫었다고.....
지금이라도 사법고시 공부만 하지 않는다면 가슴이 한순간에 트일 것만 같다고......
그러나,
자신의 깊은 마음 속에 갇혀 있었던 응어리들이 쏟아져 나오니 그나마 조금은 살 것 같기도 하다고......
부모님과의 대화가 필요한 일이다.
가족상담이 필요한 경우이다.
그에게 숙제를 내 주었다.
자신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정리 해 보라고,
그리고 부모님과 관련된 부분들을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 나갈지에 대해......
그는 마지막에 말했다.
“나도 내가 고시공부하는 것을 이렇게 싫어하고 원치 않는 줄을 몰랐네요.
그 사실을 현실적으로 깨닫고 나니 나는 나를 너무 모르고 살아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오늘, 이제 겨우 제대로의 나를 만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혼자서 깊이 생각하고 방법을 찾을 것이며,
혹여 교수님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뵙겠습니다. 그때 한 번 더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그는 떠났다.
며칠이 지났다. 그는 아마도 생각을 정리하며 부모님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원만하게 잘 조율하여
자신의 삶을 향해 적극적인 발걸음을 딛게 될 것이다.
무의식의 기능에 대해 새삼 많이, 자주 생각하게 되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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