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는 최면현상을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여러 사례들이 있어 왔으며,
이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최면의 세계를 접하게 되면서 부터
최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짐은 물론, 신기하게 생각하고 흥미롭게 여기게 되었다.
1970년대 메즈머에 의해서 현대 최면의 시대가 열린 이후 부터,
특히 19세기 초인 1813년, 최초로 무대최면의 역사는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프랑스의 과학자였던 Abbe Faria는 빠리에서 공개적으로 최면쇼의 장을 열었다.
엄격하게 따졌을 때 이 일은 비록 오늘날의 무대최면과는 형태면에서 다소 다른 점이 있었다 하더라도
무대최면의 시효로 인정 받기에는 손색이 없다고 하겠다.
그 후 유럽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서 무대최면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면의 경우, 그 시절은 물론,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인 부분이 있지만 최면에 대해 일반인들이
제대로 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며, 또한 최면 그 자체에 신비하게 여길 만한 부분이 있기에
그 부분을 악용하는 사이비 최면가가 많이 생겨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그래서 ‘스벵가리 효과’(Svengali Effect)란 말도 생겨나게 된 것이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최면, 특히 무대최면 역시 때때로 악용되거나
사람들에게 잘못된 인상을 심어 주게 주게 된 것이다.
어쩌면 무대최면은 그 자체의 성격상 많은 사람들,
집단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예기치 않게 사고도 생기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영국과 같은 곳에서는 1950년대 초에 마치 무대최면 때문에 일어난 사고 같은 일이 생겨서
무대최면 자체를 금지하는 법안이 실시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90년대에도 무대최면과 관련되는 사망사고가 발생하여
또 한번 무대최면이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 후, 그 두 사건은 무대최면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이 밝혀져서
오해가 풀리긴 했지만 무대최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된 이후였기에
그 개념 자체가 완전히 오해에서 벗어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20세기 초에 미국의 위대한 무대최면가인 오먼드 맥길(Ormond McGill: (1913-2005)이 무대최면을 크게
성공시킴으로써 다시금 무대최면의 분위기가 미국을 기점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TV 연예 프로그램 속의 "최면쇼"를 통해 최면을 일반인들에게 알린 선구자였는데,
미국최면가의 최고참’(Dean of American Hypnotists)이라고 불리며,
독창적인 무대최면백과사전(Encyclopedia of Genuine Stage Hypnotism)을 1947년에 저술하기도 하였다.
이 책은 무대최면의 바이블로 인정받고 있을 정도이다.
그는 30여년 이상, 약 40여년 동안이나 무대최면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그는 무대최면 뿐만 아니라 치료 차원에서도 전문적으로 최면을 활용하였다.
또한 영국의 폴 맥키너 (Paul McKenna) 역시 유명한 무대최면가로 활동하였으나
그 또한 현재는 최면치료분야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무대최면에 대한 관심이 다른 나라에 비해 지대한 편이었지만 불행히도
무대최면의 잠정적인 위험성이 부각되면서 비판여론이 생겨났고 그 결과,
앞에서도 간단히 언급한 바대로 1952년에는 무대최면을 법으로 금지하는 ‘1952최면법’이 시행되었다.
이 법은 사이비 무대최면가로부터 대중을 보호하고자 하는 정부의 노력을 반영하여 제정되고 시행되었다.
그러던 중, 영국의 내무부는 1994년에 무대최면의 위해성 여부를 검토하는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하여
무대최면이 과연 무대최면 관객에게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집중 연구하였는데,
다행히, 1995년에 의회에서 발표된 위원회의 보고서에서는
무대최면의 위해성에 대한 어떤 증거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론적으로 무대최면에 대한 일반인들의 오해는 근거가 없으며 무대최면은 사람들에게 위험하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게 해 준 좋은 예가 되어준다.
오늘날 구미 선진국에서의 무대최면은 일반 대중들을 위한 것과
기업체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두 가지로 구분되어 흥행을 위한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무대최면이 매우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런 시도가 없었기에 이 시도는 대단히 바람직하다는 생각으로
무대최면을 일반인, 혹은 필요한 분들을 위해 교육하고 선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대 최면은 성격상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흥미를 제공하는 기분 좋은 연예 프로그램의 기능도 있다.
결론적으로, 이 무대최면은 마술쇼와 같이 눈속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래적이고 자연적인 성향과 능력을
최대로 활용함으로써 즐거움과 재미를 주고자 하는 것이기에
대단히 건전할 뿐만 아니라 교육적인 차원에서도 도움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 안전해 보이는 길에도 위험요소가 잠재해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듯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의학에서도 불가피하게 의료사고가 따르는 경우가 있으며,
교통의 편리를 위해 발명된 자동차 역시 예기치 않게 교통사고를 불러오는 경우가 있듯이.....
그러나 그러한 사고가 있다고 해서 의학 무용론, 혹은 자동차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는 일이 없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보다 좋은 결실을 얻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최면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무대최면의 기법들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초보기술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무대최면은 일종의 '유치한 놀음’에 해당하기 때문에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최면치료사는
무대최면과 같은 것을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무대최면에서 사용하는 최면가의 기법이 단순하게 보이고
또 어떤 최면가도 할 줄 아는 기본적인 최면기법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대최면의 장면과 치료최면의 장면은 다르다.
치료 장면에서 한 내담자나 환자를 대상으로 최면을 거는 것과
다수의 대중이나 집단의 사람들을 상대로 최면을 거는 것,
더구나 순간최면을 걸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있는 능력은
단순히 최면을 할 줄 안다는 것과는 다른 능력이다.
혼자서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다고 해서 사람들 앞에서도 반드시 노래를 잘 한다는 보장은 없다.
단 몇 사람 앞에서 자기의 생각을 발표하거나 어떤 연기를 하기는 쉬워도
몇 십 명, 몇 백 명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소위 집단역동(group dynamics)이라는 것 때문이다.
상담이나 심리치료에 있어서도 이 집단역동에 기초하여
집단상담이나 집단치료라는 것이 개인상담/치료와는 별개로 발전하지 않았던가?
개인보다는 집단이 되면 보이지 않는 집단의 역동이 작용하고
그것이 개인에게 큰 심적 압력으로 영향을 미쳐서
생각, 감정, 행동이 자연스럽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뜻하지 않는 문제까지도 발생하게 된다.
대인불안이나 발표불안이라는 것이 그렇게 해서 생기게 된다.
실제로 대인불안이나 발표불안의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혼자서나 한 두 사람 앞에서는
전혀 문제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집단이 미치는 힘에 대해서 당연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무대최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최면의 능력이나 기술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무대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최면을 걸고 최면쇼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재미와 흥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특별히 연습하고 훈련받지 않으면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이 한 두 사람 앞에서 실수를 할 때 경험하는
스트레스나 불안감은 더 큰 집단 앞에서는 당연히 더욱 엄청나게 작용한다.
그래서 큰 무대를 앞둔 공연자나 연기자, 큰 경기를 앞둔 운동선수들은 긴장할 수 밖에 없고
작은 대회에서 잘하는 사람이 큰 대회에서 뜻하지 않는 실수로 낭패를 경험하게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이쯤되면 무대최면을 결코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할 이유들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무대최면에서는 무엇보다도 큰 자신감과 두둑한 배짱이 필요하다.
그리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 주눅들지 말아야 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느긋한 여유와 유연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반드시 생각대로만 일이 돌아가고 풀리는 것은 아니다.
무대최면에서도 뜻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런 경우에도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용기와 순발력이 없다면
무대최면을 감히 시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무대최면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최면적으로 연기를 하고
사람들에게 최면을 걸고 최면을 통해서 흥미를 유발해야 한다.
그러나 무대최면은 결코 단순한 흥미와 재미로 끝나서는 안 된다.
마술쇼는 흥미와 재미로 끝이 나도 될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차피 눈속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대최면의 경우는 다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연스런 인간의 마음을 최대로 활용함으로써 재미를 주는 것이며,
그러한 재미를 통해서 사람들은 마음의 세계에 대해서 알고 공부하게 된다.
여기서 내가 ‘공부’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무겁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무엇이든 새롭게 배우고 깨닫는 것은 공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무대최면을 통해서 최면의 신비함을 알고 배우며
동시에 마음과 태도의 힘에 대해서 깨닫게 된다.
생각 하기에 따라서, 어떤 마음으로 임하느냐에 따라서 마음과 생각이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또 신기한 마술과 같은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그러한 원리는 결과적으로 참여자에게 ‘일체유심조'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며
또한 내가 어떻게 마음 먹느냐 하는, 마음먹기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깨우치게 한다.
일반 최면치료가가 무대최면을 하나는 것은 더 큰 능력을 갖는 것을 말한다.
사실 에릭슨최면법을 개발한 밀턴 에릭슨도 초기에 무대최면가인
Ralph Slater와 Trang Poldar로부터 그들이 사용하는 최면언어를 통해
최면기법 또는 암시적 표현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무대최면에서는 주로 순간최면법을 많이 활용하다.
그것은 관객들에게 가장 빠른 속도로 최면을 거는 방법이며,
아울러 보다 유연하게 최면유도를 하거나 암시를 줌으로써
관객들이 가장 자연스럽게 최면에 걸리도록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떤 최면전문가도 그러한 효과적인 방법을 거부하거나 무시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내담자나 환자 앞에서 보다 유연하게 최면을 유도하고, 어떤 사람들 앞에서도
자신있게 최면유도를 하면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결코 가벼이 볼 수 있는 능력이 아니며
그러한 것은 곧 무대최면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고 할 때
무대최면의 가치는 오히려 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최면유도가 모두는 아니다.
최면유도도 중요하지만 최면에 걸린 사람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바람직하게 그 상황을 처리하고
치료적인 차원으로 연결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사실 심리 치료라는 것이 꼭 일대일의 상황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무대최면에서도 얼마든지 흥미제공과 함께 치료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그러한 면을 이미 ‘무한도전’이라는 TV 오락프로그램에서 선 보인 바 있다.
단순한 재미와 흥미가 아닌 그 이상의 치료적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무대최면이 일반 최면치료가 줄 수 없는 혜택이고 도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저런 부분들을 총체적으로 검토했을 때
무대최면의 필요성과 활용성에 대한 장점은 충분하며 그 가치 또한 간과할 수 없다고 본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악용하면 문제가 있기 마련이기에
무대최면도 잘못 사용하면 얼마든지 나쁜 영향을 불러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능한 사람이 효과적으로 잘 운영할 때 무대최면은 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큰 재미와 흥미, 그리고 교육적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번에 새롭게 계획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무대최면가 양성과정’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지고 흥미진진해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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