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례

설기문교수의 최면상담 - 대화가 필요해

설기문 2008. 5. 27. 11:47

 

어느 할아버지께서 손주의 손을 잡고 상담실을 찾으셨다.
상담 역시 대학을 다니는 손주가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위해 다양한 위로를 해 보았지만
별로 효과가 없던 중 최면관련 이야기들에 관심을 갖고 최면치료나 최면상담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설기문 교수님께 최면상담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상담실로 전화를 하고
예약을 한 후 할아버지를 모시고 찾아 왔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지방에서 유명인사라고 하셨는데 많은 재산과
휼륭한 자녀들로 인해서 더 유명하시다고.....
그런 할아버지께서 몇 년 전 할머니를 여의신 후 혼자서 지내시는 날들이 힘들어
보이는 것도 물론이지만 자신의 여생이 얼마남지 않은 것 같은 생각에 재산정리를
시작하셨다고 했다. 임대사업도 하셨던 할아버지는 빌딩을 매도하고 또 자잘한 사업체들을 정리하시고
사회에 일부 환원을 해야할까 아니면 어떻게 의미있게 자신의 돈을 써야할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겉으로 보기엔 성공적인 삶을 살아내고 있는
자녀들이 그 부분에 대해 대단히 예민하게 반응을 했다고 한다.
시집을 간 딸들도 그 돈에 대해 민감함은 물론이고, 아들들과 며느리 역시 신경을
그 돈에 곤두세우고 있음을 눈치채게 되었다고 .... 또한 은근한 암투가 빚어짐을 목격
하셨다고 하며 눈물을 흘리셨다.
 
고단한 삶을 살아오면서 질곡이 깊은 삶 속에서 할아버지는 자녀교육에 힘을 쏟으셔서
자녀들을 휼륭하게 성장시켰으며 경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셔서 어느 정도 재력도
확보하신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만족스러워 했으나 최근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들은
할아버지를 우울하게 했으며 분노까지 수시로 치올라 온다고 했다. 그 중 둘째 아들은
잘 나가던 사업이 최근에 많이 기울기 시작해서 더욱 더 할아버지의 일거수 일투족에 예민하고
가끔은 해서는 안 될 불효에 가까운 말들도 한다면서 할아버지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또한 전혀 예기치 않게 크고 깊은 슬픔 같은 것이 내면에서 올라오기도 하고
어서 할머니를 따라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요즘에와서는 인생에서 아무런 기쁨도 없고 죽음과 슬픔,
그리고 원망과 분노만 자꾸 치올라온다고 하셨다. 그리고 식욕도 없으며 잠자리도 불편하고
주변 사람에 대한 불신감 같은 것이 커지게 된다고.... 원래 이렇지 않았는데 나이 먹어가며
이렇게 변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 또한 크다고..... 할아버지를 최면으로 유도했다.
최면감수성이 높은 할아버지는 금새 최면에 깊이 들어가셨기에 비교적 상담이 편안해지게 되었다.

최면을 통해 할아버지의 우울과 관련된 핵심 감정을 찾기를 시도했다.
현재 경험하는 정서에 몰입하며 핵심감정을 찾아보기를 시도하자 그 분의 마음 깊은 곳에는
자녀들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가 대단히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항상 신뢰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해 오던 자녀들이 어느 날 부터 자신을 향해 등을 돌리고
사랑이나 애정마져 거두어간 것 같은 막연한 거리감과 불안감, 그리고 슬픔과 분노가 응어리져
있었던 것이다. 그 감정의 회오리 속에서 그분은 많은 오열과 함께 통곡했다.
감정이나 정서를 최대한 증폭시켜 그 속에서 그것들을 쏟아내게 하는 것은 배설의 효과가 크다.
한참이나 통곡을 하시도록 지켜 본 후 감정정리를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앵커링 기법은 이런 경우 대단히 효과적이다.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장남이 태어나던 순간과 또 차남, 그리고 딸들이 하나 하나 태어나던
순간의 기쁨을 떠 올리게 했다.
장남이 태어났을때 할아버지는 정말 춤을 추고 싶었다고 했다.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었으며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았다고.....
그리고 무럭무럭 잘 자라고, 공부 잘 하고, 마음씨 착한 자녀들의 모습을 일일히 떠 올리게 했다.
조금 전과 달리 할아버지는 어느 새 얼굴 가득 미소가 번져나고 행복이 가득한 얼굴빛으로 회복되셨다.
그리고, 그렇게 잘 성장해 준 자녀들에 대해 고맙고 대견하다고....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분노하고 실망하는 감정들에 대해 자녀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신 적이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자 할아버지는 대화를 하지 못했다, 미워서 말도 하기 싫었다..... 는 표현을 하셨다.
그래서, 아마도 자녀분들도 할아버지가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느끼고 가까이 다가오기가 어려웠지
않을까? 아버님께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또 가족으로서 진지하게 마음을 열 기회를 기다리지나 않을까....
그런 말씀을 드리자 할아버지는 갑자기 무릎을 치시면서 한번도 그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고.,...
왠지 자식들이 자신을 돈으로 보는 것만 같은 생각에 미워만 했었다고....
현실적으로 자식들이 어떻게 살아가며, 어떤 생각들을 하며, 어떤 위치에서 삶을 바라보는지에 대해
어린 시절에 나눈 대화를 빼고는 진지한 대화를 나눈지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고....
이젠 충분한 대화를 하고 자녀들이 돈이 필요하다면 가족회의를 해서 서로 설득하고 이해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분배해주고 사회를 위해 기부할 돈의 액수마져 함께 의논해서 정해야겠다고....
아버지 노릇을 잘 못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며
할아버지는 한순간에 자녀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상담 중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녀들과 대화를 나눌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적인 이야들을 나누었고,
너무 자신의 생각에 충실하고, 자신의 생각 속에 빠져 분별력이 약한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좀 더 일찍 자녀들과 대화하고, 때로는 의지하고 기대어 보기도 했어야 했는데.....
그런 후회스러운 감정들을 상담을 통해 정리를 하고,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원리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할아버지는 상담센터가 있음에 감사하다고 하셨다.
손주가 고맙다고 어께를 토닥토닥 두드리는 할아버지가 행복해 보였다.
주변에 힘든 어르신들이 계시면 상담 받도록 적극 주선 하겠다고 하시며 할아버지는 떠나가셨다.
그 분이 오래 오래 가족들과 행복한 여생을 보내셨으면 하는 기도가 절로 나온다.
상담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늘 사람은 귀하고 소중하며 천성은 누구나 착하다는 것이다.
아픔을 덜어주고, 슬픔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 하려면 지속적이고 바람직한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대화를  통해 마음의 빗장을 열어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