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을 앞둔 어느 날 느닷없는 두 사람의 방문을 받았다.
상담센터의 상담은 대개가 예약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기에
불현듯 찾아오시는 분들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의아해하다가
함께 온 여자분의 모습을 보며 사태를 직감했다.
남편인 듯한 남자분의 손에 이끌려 온 30대 초반의 여성,
그녀의 옷차림새는 정상적인 차림새가 아니었고,
그녀의 머리 또한 헝클어질대로 헝클어져 수세미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남편분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태를 짐작했다.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나고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되어
가까운 친지집을 떠돌며 후일을 기약하고 있던 차에 (자녀는 없다고 함)
며칠 전 남편의 친구분이 경영하는 수퍼마켓에서 잡일을 도와주던 그녀가
일을 마치고 집에 잠을 자러 들어가는 도중,
자꾸만 그 집에서 자고 싶지 않다고, 그 집이 무섭다고,
그냥 찜질방가서 잠 자고 싶다고.....
그러나 당장 돈 한 푼을 아껴야할 상황이기도 하고,
마침 그 집일을 도와주기도 했으며 집주인이 충분히 허락한 상태여서
남편이 우겨서 잠을 자기 위해 방 안에 들어서는 순간,
부인이 뭔가에 놀란 듯 흠칫! 하더니 그때부터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더니 방안의 모든 물건들을 여기저기 집어던지고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더라는 것.....
그리고 남편에게 폭력을 휘두른 후 그녀는 사라지고 .... 그렇게 밤을 새고,
이틀이 지나도록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행방을 알아낼 길이 없었다고 했다.
이틀 후 집앞을 서성이는 그녀를 다시 발견하고 대화를 시도했지만,
도저히 의사전달이 되질 않은데 그녀는 말끝마다 본 아카데미 상담센터에 가서
"설교수님을 만나야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더라는 것......
설기문 박사님께서 늘 아카데미에 계시는 것이 아닌데,
그날도 역시 박사님은 계시질 않아서 본 상담센터 상담선생님이 추워보이는
그녀를 따뜻한 난로 옆에 앉히고 대화를 시도해 보았으나
전혀 커뮤니케이션이 되질 않았다.
후일을 기약하고 그녀를 보내긴 했지만 왠지 마음이 늘 무겁기만 했다.
삼일 후 남편분은 약속대로 교수님을 만날 수 있을거란 희망을
그녀에게 안겨주며 상담실을 들어섰다.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보이는 그녀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잠도 못 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돈도 없어서 찜질방에서만 겨우 쉬며 그동안 지냈다고....
설교수님께서 그날 하루 종일 그녀와 상담을 시도했다.
그녀는 순간순간 아랫턱을 심하게 떨며,
자신은 지금 울고 있다고....
그리고 자신은 예수님이기도 하고 부처님이기도 하다,
그리고 상담선생님들을 바라보며 빨리 회개하라고....
이상하리만치 심한 턱 떨림 현상은 상담을 거의 진종일 마쳐갈 즈음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의 눈빛은 차츰 돌아오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구정이 다가오는 즈음이라 그들은 친구집에도 머물기도 힘겹다고....
그래서 가까운 분에게 부탁드려 그분이 당분간 그들의 잠자리를 제공해주며
추이를 지켜보도록 주선이 되었다.
그 이후, 서너차례의 상담이 더 이루어졌고
마지막 상담 무렵엔 그녀는 거의 회복이 된 듯 보였다.
누군가의 아픔을 곁에서, 아주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는 것은 곁에서 보는이도
마음이 아프긴 매한가지임을 자주 느낀다.
그녀의 상태가 그렇게 진행되기까지 그녀가 겪어 온 삶의 질곡들을 얘기듣는 순간
정말이지 마음이 아렸다.
앞으로 그녀는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녀를 서른이 넘도록 힘겹게 한 그녀의 삶을 잠시 들여다 보며
우리 모두 한번쯤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은 의도로......
그녀는 많은 형제 중 가운데였다고 했다.
부모님이 계시긴 하지만 어머님은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는 상태이며
아버님은 여전히 술과 폭언,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로
남아 계시며 건강이 악화된 상태라고......
그녀의 기억속의 어머니는 늘 아버지께 맞거나 아버지가 두려워 도망다니는 모습으로 남아있다고...
모진 폭력을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그녀가 초등학교 다닐 적부터 정신과 병동 신세를 졌다고......
그리고 그녀의 언니는 몇 년 전 교통사고로 머리를 심하게 다쳐
의식이 돌아온지가 그리 오래 되질 않았다고,
그런 환자같은 상태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으며
남동생 역시 제대로의 생활을 하질 못해서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으로 아버지와 형제들이 살고 있다고....
그리고, 아버지의 폭력과 폭언이 너무 싫고 무서웠던 그녀는 고1때 가출을 하였고
그 이후 여러 술집을 전전하며 죽어라 돈을 벌었다고,
근데 그녀가 사랑했기에 함께 살았던 남자가 그녀의 모든 돈과 월세 보증금까지 빼내어 사라졌다고....
망연자실한 그녀는 다시 재기하려 노력해서 어느 정도 일어섰는데
또 다시 어느 남자를 만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그녀는 또 다시 처음과 같은 일을 당했다고 한다.
세상에 대한 비관적인 마음이 그녀를 도박으로 이끌었고,
그녀는 도박을 즐기며 점점 더 수렁에 빠지게 되었고 급기야 도박으로 인한 빚 때문에
살던 곳을 등지고
전혀 다른 객지로 떠나게 되었다고....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잠깐 행복했으나,
사람 좋은 그녀의 남편은 사업이 부도위기에 처하고 급기야는
하루 세끼니를 해결할 여력마저 없을 지경이 되었으며
결국 그녀는 장래를 생각하여 가입했던 종신보험을 해약하여
(중도 해약으로 인해 그녀는 원금보다 너무 적은 돈을 손에 넣었다고)
그 돈으로 여기저기 친지나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살길을 찾던 중 벌어진 일이었던 것이다.
거의 회복이 된 그녀의 웃는 모습은 참으로 이뻤다.
그녀는 통닭집을 하고 싶다고 했다.
양념 소스의 비법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소망은 그냥 밤이면 다리 뻗고 눈치 보지 않고 잘 수 있는 작은 방 하나와
남편과 함께 걱정 없이 세끼를 먹는 것이라고 했는데......
암담해 보이는 현실,
희망이라고는 없어보이는 현실 앞에서 그녀는 꺼이꺼이 많이도 울었다.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그리고 건강한 자신의 몸이 너무 싫었다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되는 일이 없는 자신의 인생이 저주스럽다고,
태어난 후 한번도 따뜻한 격려를 받아 본 적이 없는 자신이 싫다고,
차라리 정신을 놓아버리고 아무렇게나 살다가 죽어버리고 싶었다고.....
돌아갈 곳도 없으며,
오라고 하는 곳 하나 없는 현실이 너무나 비참하다고......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 선 후의 며칠이 내게도 지옥 같았다.
삶은 왜 이리 공평치 않은 것일까?
그녀는 고향을 일단 내려가겠다고,
그리고 나선 곰곰히 생각을 정리하겠다고,
살길을 다시 찾아야겠다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 행복하다고.....
남편에게 수도 없이 부탁했다.
그녀에게 언제나 수호신 같은 존재로 함께 해 주시라고....
그 분도 그녀를 몹시 사랑하기에 그녀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기도할 뿐이라고....
삶의 터널은 때로 생각보다 어둡고 길기도 하다.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 우리는 자신의 모습이나 상태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야할까......
무거운 마음으로 보낸 며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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