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제법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몹시도 뜨겁던 여름이 언제 갔는지 모르게 절기는 바뀌었고
한 해의 결실을 맺는 가을이 왔다.
이렇게 가을 바람이 불 때 사람들은 지난날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우리가 지난날을 돌아볼 때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어떤 사람들은 아쉬움과 슬픔, 때로는 분노를 느끼거나
잘 못 했던 일들을 주로 떠올리면서 힘들어하기도 한다.
하지만 굳이 지난날을 돌아보지 않더라도
평소에 그러한 감정을 강하게 느끼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감정의 고통은 그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그에 상응하는 신체적 증상을 일으키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서 머리가 아프다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손발에 열이 나며
혈압이 오르는 등의 증상이 그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홧병이란 말을 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유난히 많은 홧병은
원래 동양의학에서 쓰이던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한방에서 많이 다루어져 왔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에서도 이 문제를 많이 다루고 있다.
그리고 홧병은 국제적으로도 관심을 받고 있어서 미국정신의학회에서는
‘한국민속증후군’의 하나로 정식으로 인정하고
그 이름을 ‘hwa-byung’이라는 우리식 용어로 홧병을 정식 등록하였다.
이 학회에서는 홧병이 일종의 분노증후군이라고 하면서 분노의 억제로 인해
발생한다고 설명하였다. 사실상 미국정신의학회의 설명과 마찬가지로 홧병은
우리나라의 특징적인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오랜 역사적 배경이나
독특한 사회문화적 풍토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는 유난히 외침이 많아 민중의 한(恨)이 많이 억눌렸었고
가부장적인 유교문화적 전통으로 인해 여성들의 한 또한 많이 쌓여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한과 관련된 홧병은 그 성질과 발생과정 및 증상 면에서
한국적 고유성을 띨 수 있다. 사실 우리가 평소에 분노의 감정을 느낄 때
그것을 적절하게 풀 수가 있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풀지 못하게 되면
그것은 가슴에 응어리가 되어 남는데 그것이 일종의 '한'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이 여러가지 신체적, 정신적 증상으로 표출되어 홧병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홧병의 그러한 개념은 이제 좀 더 확대되어
정신적인 원인으로 인해서 생기는 모든 정신증상이나 신체증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단어로 까지 발전해온 느낌이다.
또한 오늘날과 같이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서 나타나는
갖가지의 정신적, 육체적 증상들도 홧병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고 하겠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는 화와 관련된 표현들이 많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다”
“열 받는다” “속 끊는다”와 같은 표현들을 많이 한다는 사실에서 보듯이
감정을 나타내는 우리의 말 속에는 '화'와 관련되는 단어가
많이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속상함, 억울함, 분함, 화남 등의 상태를 화라는 단어로
표현을 하게 된 이유를 한의학에서는 홧병의 증상들 중에는
실제로 열에 의한 증상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면,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과 손 발에 열이 나고,
오줌이 노랗게 나온다든가 하는 열증상들을 많이 나타난다는 얘기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봤을 때는 결국 마음에서 응어리진 한의 문제가
홧병의 진정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늘 어떤 욕구를 가지며 또 그 욕구를 충족하거나 해결하기 위하여
행동을 한다. 따지고 보면 삶의 과정은 욕구해결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이 개인의 모든 욕구를
다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욕구들은 방해를 받고 충족되지 못한 채로 방치된다.
이때 욕구불만 내지 욕구좌절상태가 조성되는데
그것은 일조의 마음의 응어리가 된다.
하지만 그 응어리가 어떤 형태로든 풀릴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지 못할 때
그것은 계속 커지거나 쌓이면서 결국 한으로 발전한다고 보여진다.
마음의 작용은 신체․생리적 증상을 낳게 된다. 때로는 그 영향이 너무 작아서
의식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말이다.
이러한 현상을 심신상관성(mind-body connection)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불안하거나 긴장할 때 가슴이 두근거리고 몸이 위축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심신상관성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앞에서 설명한 한은 부정적인 정서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부정적 정서는 몸에 나쁜 에너지로 작용하여 몸을 병들게 할 수 있다.
그것은 교감신경계의 작용과도 무관할 수가 없다.
주지하다시피 인체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스트레스호르몬인 부신호르몬이
분비하고 그것이 과도할 때 몸의 이상증상으로 발전한다.
결국 한은 강한 스트레스 경험이 될 수 있기에 몸의 나쁜 증상으로
표출될 수 밖에 없다. 이상과 같이 봤을 때 우리가 홧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의료적 도움도 필요하지만
결국은 마음을 다스려야 함을 알 수 있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결국 마음의 응어리를 푸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통하는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사람들과
자주 대화의 시간을 갖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밀도 있는 대화를 함으로써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고 그 결과 부정적 정서를 삭힐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자기노출(self-disclosure)이라고 하는데,
심리학자 주라드(Jourard)와 같은 사람은 자기노출을 정신건강의 한 지표로
삼기도 한다. 실제로 마음 속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생각과 감정을 함께 나누는 경험을 하는 것은
카타르시스 효과와 함께 삶의 활력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 된다.
한편 응어리를 풀기 위한 또 다른 방안으로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좀 더 넓은 틀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된다.
풀리지 않는 문제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현실은 현실대로 인정을 하면서
자기에게 가능한 긍정적인 현실의 부분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마음의 여유를 좀 더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마음을 직접 다스릴 수 없을 때는
환경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럴 때 환경치료라는 개념을 동원할 수 있는데
그것은 직접적으로 환경을 바꿈으로써 치료적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둡고 침침한 실내 분위기를 좀 더 밝고 깨끗하게 가꾼다거나
조용한 휴식공간을 확보한다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야외로 나가서 자연과 자주 접하는 것 등을 말한다.
이 가을에 모두가 좀 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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