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문 칼럼

'주변시야'의 자연치유력

설기문 2011. 4. 18. 12:34

 

나는 한 때 눈을 다쳐서 한쪽 눈에 안대를 착용하고 한 쪽 눈으로만 생활을 해본 적이 있다. 그때 많은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그 불편함은 단순히 육체적인 불편함을 말할까? 아니면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따지고 보면 모든 동물의 눈은 두 개 이며 좌우로 나 있다. 눈이 두 개라는 것은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 입체감을 느끼게 하는 필수적인 수단이다. 만약 눈이 한 쪽 뿐이라면 거리감이나 입체감을 느낄 수 없다. 이 같은 사실은 당장이라도 실험을 통해서 확인해볼 수 있다. 지금 한쪽 눈을 감고 책상 위에 있는 몇 가지 물체들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손으로 잡으려고 해보라. 그리고 잠시 후에 두 눈을 뜬 채로 같은 행동을 반복해보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처음에는 구별하기 어려울지 모르나 여러 번 반복해본다면 한쪽 눈을 감은 상태에서는 무엇인가 좀 어설픔을 느낄 것이다.

 

입체감은 물체를 2차원의 평면적 차원에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3차원의 입체적 차원에서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2차원의 가로, 세로의 길이나 넓이뿐만 아니라 높이까지도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원근감이자 거리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곧 눈이 두 개 있음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눈이 상하가 아니라 좌우로 나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생물학자기 아니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알 바가 없으나 좌우의 눈 때문에 우리가 좌우로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그렇다면 정말로 우리에게 눈이 좌우로 분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 때문에 좌우로 넓은 시야를 갖는다는 것은 어떤 위미가 있을까?

 

사실 눈이 좌우로 분포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 좌우의 시신경이 동시에 자극을 받고 그렇게 자극받은 좌우의 시신경이 좌뇌와 우뇌로 동시에 전달됨으로써 좌우뇌가 동시에 자극받게 한다는데 의미가 있다. 그렇게 좌우뇌가 동시에 자극을 받게 되면 좌우뇌의 동시적 반응으로써 사물에 대하여 입체감있는 시각적 인식을 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입체감있는 시각적 인식이란 좁은 시각이 아니라 편중되지 않은 균형감각있는 시각을 갖는다는 것을 말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시험에 떨어졌거나 사랑에 실패하여 괴로워하고 있을 때 흔히 우리는 “세상을 넓게 보라”고 말한다. 실패를 본 사람의 마음에는 지금 떨어진 그 시험이 모두 인 것 같고 세상에는 지금 실패를 본 사랑의 대상이 되는 그 사람만이 있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세상은 넓기에 또 다른 시험의 기회가 있으며 또 새롭게 사랑할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어느 재벌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명언을 남기지 않았던가?

 

우리가 문제 속에 빠져 있을 때는 오직 그 문제만 생각나거나 그 문제만 생각하게 되며 아울러 그 문제와 관련한 감정만 느끼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NLP 용어로 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연합이란 특정한 상태나 조건에 관여하거나 몰입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 속에서 문제만 생각하거나 문제와 관련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곧 연합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연합 상태는 넓은 의미에서 트랜스 상태이자 최면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서의 어떠한 오감적 정보가 있어도 그것이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문제뿐만 아니라 문제와 관련한 부정적 정서 상태에 빠짐으로써 연합되게 되면 주변의 어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나 충고가 있더라도 그 정보나 말이 수용되거나 귀에 잘 들어오지 않으며 모두가 쓸데없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대하여 이성적이거나 합리적 대응을 하기 보다는 감정적 행동이나 반응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라 하더라도 세월이 지나면서 시간적 분리 경험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주변과 뒤까지도 돌아보게 되는 여유를 갖게 된다. 이 경우에 비로소 문제에서 벗어나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생각하거나 다른 입장에서도 자신과 문제를 바라보게 되게 된다. 그래서 “내가 그때 왜 그랬던가?”라는 후회도 하고 “지금같으면 다르게 생각하거나 행동할텐데...” “내가 좀 더 양보할 걸...” “내가 욕심이 너무 과했었나봐...” “그때는 철이 없었어...”와 같은 말이나 생각을 하면서 반성과 후회를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시간의 자연치유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시간이 주는 자연치유효과라는 것이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시간은 우리의 상처를 그렇게 자연스럽게 치유해주는 힘을 갖고 있다. 이것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인데 시간이 지난 후에 뒤를 돌아볼 때 과거의 자신을 보면서 그 모습을 새롭게 인식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결국 과거의 문제를 경험하던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가 되면서 분리효과도 함께 경험하는 것이다. 문제 속에 있을 때는 문제에 연합되어 있기에 문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어떻게 하든 분리가 되면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기에 치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상처로부터 치유되는 과정에서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여기서 주변시야(Peripheral vision)의 파워를 생각해보게 된다. 이것은 고대 하와이에서 발달된 방법으로 하칼라우(Hakalau)라고 한다. 이 상태에서는 보다 이완되고 편안한 심신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치유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주변시야상태에서는 이완과 치유기능과 관련되는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고 스트레스 및 긴장과상태와 관련되는 교감신경계의 기능이 억제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