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우리나라 과학계를 이끌어갈 최우수학생들의 본거지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두 학생이 잇달아 자살하는 사고가 생기고 있다. 지난 1월에 한 학생이 자살하더니 드디어 3월 21에 다시 한 학생이 자살을 함으로써 충격적인 뉴스가 되고 있다.
이 학생의 블로그에는 "우울하다. (중략) 힘들다. (후략)"는 글이 19일 오후 8시 47분 마지막으로 올라와 있었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결찰이 이 같은 블로그 글과 가족 등에게 남긴 유서내용, 유족 진술 등을 토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 이기에 아직 어떠한 결론을 내리기는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 당국으로서는 올해 들어서만 두 명의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하자 학생처를 중심으로 정확한 경위 파악에 나섰다. 그런 가운데 학교에서는 신입생들의 대학생활 적응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새내기 지원실을 신설하는 한편 기존 4명이던 상담센터 인력을 6명으로 증원할 계획도 갖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안타까운 이런 상황에서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여러 종류의 많은 자살 사건이 생길 때마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예방에 대한 것이다. 어떤 일이든 사건이 벌어진 후에 대처하는 것보다 그 일이 벌어지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 예방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왜 그럴까?
자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자살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경우든 자살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좌절감이나 우울감과 같은 심리가 개입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혼자서 또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나 고통 속에서 죽음 외에는 어떠한 선택도 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상황... 결국 그 한계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삶에서 좌절이나 실패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의 문제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그러한 차이를 특히 정서적 감수성 (emotional sensitivity)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다.
정서적 감수성이란 어떤 상황에서 또는 그 상황을 얼마나 정서적으로 민감하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와 관련된다. 그래서 정서적 감수성이 높은 사람은 정서적으로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남이 보기에 별 것 아닌 일에도 정서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여 마음의 상처를 잘 입고 잘 놀라거나 괴로워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정서적 감수성은 잘 승화될 때 문학이나 예술적 능력으로 발전될 수 있다. 그래서 훌륭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거나 예술적인 끼로 발전될 수도 있다. 실제로 뛰어난 문학가나 예술가들은 모두가 이러한 정서적 감수성이 높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서적 감수성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다. 잘 관리하고 승화하여 자기발전이나 계발로 활용하면 아주 좋은 자산이나 자원이 될 수 있는 정서적 감수성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방치될 때 뜻밖의 고통과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동일한 실패나 좌절 상황에서 감수성이 높지 않다면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거나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감수성이 높기 때문에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면 우울증이나 좌절감을 경험하면서 삶에의 의지까지도 상실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 결과가 바로 자살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결론적으로 정서관리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교육에서는 공부를 잘 하게 하고 성적을 올리는 일에 있어서는 큰 투자를 하고 관심을 베풀지만 정말로 중요한 정서 관리를 위한 교육과 투자에는 관심이 없고 소홀한 것 같다. 꼭 큰 일이 벌어져야 허둥지둥 사후약방문을 하지만 평소에 꾸준한 관심과 관리가 없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다른 칼럼에서도 지적했듯이 어떤 고등학교가 얼마나 많은 수의 학생들을 일류대학에 보냈느냐에 따라서 그 학교의 수준이 결정되는 상황에서는 진정한 교육의 풍토가 조성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을 일류대학에 한 명이라도 더 보내기 위하여 온갖 지혜를 짜내고 노력을 하는 상황에서 또 일류대학에 많이 보낸 숫자를 자랑하면서 그러한 사실을 드러내보이기를 좋아하는 우리네 교육풍토에서는 정서관리에 대한 관심이 제대로 자리잡을 수도 없을 것이다.
흔히들 ‘전인교육’이니 ‘성숙한 인간을 양성해야 한다’는 말은 잘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하기 위한 제도적인 관심과 노력은 어디에도 쉽게 보이지를 않는다. 한때 정서관리의 중요성과 관련하여 EQ라는 것이 유행을 했지만 그것은 한때의 반짝 관심에 불과하였고 궁극적으로는 학력 위주의 학생지도와 교육 풍토에서는 언제라도 또 다른 유사 사건의 발생은 충분히 예견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정말로 심각하게 생각할 것은 학생들의 학력 못지 않게 마음을 살피고 정서적인 면에서 스스로를 관리할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사회에서 많은 부적응의 문제를 경험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작게는 가정에서 자신의 부모 밑에서 크게는 학교에서의 학력제일의 교육풍토 속에서 정서적으로 상처입고 인간관계에서의 애정과 관심을 받지 못한데서 문제가 시작되거나 발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번의 KAIST의 최우수 학생의 자살 사건을 접하면서 학력과는 다른 차원에서의 정서적 감수성의 중요성에 대해서 새삼 되새겨보게 된다. 그리고 효과적인 정서관리의 문제에 대한 관심과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점을 상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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