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문 칼럼

슬픈 구제역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공무원들

설기문 2011. 1. 10. 20:01

 

‘소’를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고향 같아진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에 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사실 전통적으로 우리네 시골에서는 소가 가장 큰 재산이었다.

어릴 때, 소죽을 끓이고 산과 들에서 소를 먹이던 추억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눈을 껌벅이는 소의 큰 눈과 음매~ 하고 길게 우는 소울음 소리는 평화로운

시골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나 또한 시골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찍 도시로 이사를 나갔지만 방학이나 명절 때면 할아버지가 계시는 시골로 자주

내려가곤 하였다. 성장한 후에는 고향을 자주 찾을 일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고향 생각을 하면 산과 들의 풍경은 물론이고, 소를 몰던 장면이 떠오르고

소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소가 재산의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

농부들 삶의 일부분이 되어 가족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점을 실감나게 잘 보여주었던 것이 바로 ‘워낭소리’라는 영화였을 것이다.

북미 지역을 여행하면 볼 수 있는, 넓은 들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는

소의 모습과는 달리 우리나라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소의 모습은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농부와 생사고락을 거의 함께 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많은 일을 하고

또 든든한 살림밑천이 되어 준다.

 

이러한 소를 비롯한 가축들이 요즘 크게 수난을 받고 있다.

이른바 구제역 파동으로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수많은 소와 돼지들이 죽어가고 있다.

전국을 휩쓸고 있는 구제역 파동 때문에 구덩이에 생매장되어 죽어가는

소와 돼지 등 가축들이 하루가 무섭게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살아있는 가축들이 생매장되는 장면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보도를 통해서 접하면서도

마음이 아픈데, 그렇게 죽어가는 소와 돼지들도 마음이라는 것일 있을텐데 그 심정이

어떨까를 생각하면 참으로 기가 차고 말이 막힐 지경이다.

그리고 직접 자신의 가족과 같은 가축들이 생매장당하는 현실을 지켜봐야 하는

농부들의 마음은 더 이상 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은 그러한 가축과 농부들도 고통이 크겠지만

뜻밖에 의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살처분에 참여해야만 하는 공무원, 군인,

경찰들의 심리적 고통도 생각 이상으로 크다는데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 분들로서는 하루도 쉬지 못하고 매일 살아있는 가축들을 살처분하는 현장에서

울부짖는 소와 돼지들의 몸짓과 소리를 보고 듣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보도에 의하면 구제역 피해지역 주민 뿐만 아니라 살처분에 참여하고 있는

공무원, 군인, 경찰들이 악몽 등 수면 장애를 겪을 뿐만 아니라 PTSD 즉,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로 고통을 받으며 시달린다고 한다.

밤낮 없는 방역작업이 진행되는 와중에 공무원과 축산농민들이 살처분한

돼지 울음소리가 자꾸 들리고 잠도 오지 않는다고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에서 끝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이번에는 구제역 살처분 작업에 동원된 수의사들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잇따라 사표나 휴직신청서를 냄으로써 당국이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동물이든, 사람이든 죽음을 지켜보는 것이 쉽지 않다.

 

PTSD,

그것은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대형사고나 심각한 심신의 고통을 겪은 사람이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순간의 경험을 지속적으로 재경험하게 되는 정신적 후유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 환자는 심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그 심리적 문제의 여파로 육체적으로도

후유증을 겪기에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생각해보라.

한 두 마리도 아니고 수 십, 수 백마리의 살아 있는 가축들을,

한 두 번도 아니고 수 십번이나 살처분 해야 한다면 그것을 그냥 바라보는 것도

어려울텐데 직접 그 일을 수행하는 당사자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죽어가면서 울부짖는 가축들의 몸부림과 본능적 울음소리가 가슴을 때리고

시야를 어지럽히리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무의식은 특별히 정서적 경험을 잘 기억하고 오래 기억하는 버릇이 있다.

특히 극적인 경험은 쉽게 기억된다. 물론 감격스럽고 행복하거나 특히 즐거운 경험들은

오래 기억될수록 좋겠지만 고통스런 경험들은 오래 기억됨으로써, 오히려 장기간에

걸쳐서 고통을 주게 된다. 부정적 경험들은 경험이 끝난 후에도 계속하여 마음의 장애로

작용하여 심신의 고통을 주게 된다. 그래서 일상적인 생활이 힘들게 되기도 한다.

 

전쟁을 경험한 군인들이나 교통사고, 화재사고, 살인사고와 같은 큰 사고를

경험한 사람들은 사고 당시의 충격 때문에 PTSD를 경험하기가 쉽다.

PTSD의 경험은 심리적으로 불안, 우울, 무기력, 자신감 상실, 죄책감 등의 고통을

남기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심리치료가 필요하다.

 

특히 PTSD는 의식보다는 특히 무의식적 차원에서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무의식을 다루는 치료가 효과적임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의 구제역 파동으로 고통받는 많은 분들에게 무의식적 차원에서의

치료적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할 수 있다면 그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고통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다행스럽게도 당국이 이들을 위하여 상담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이왕이면 무의식적 차원을 치료하는 상담이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