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문 칼럼

이타카의 가을

설기문 2010. 10. 16. 20:32

이타카 (Ithaca) .... 코넬대학교가 소재하고 있는 작은 도시의 이름이다.

나와 아내는 지금 코넬에서 유학하고 있는 아들에게 와서 잠시동안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타카에 와 있는 셈이다.

 

이타카라는 도시, 한국 사람으로서 이 도시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처럼 코넬대학교와 관련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 수도 있겠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이 도시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되었단다. 그리고 실제로 그리스에는 이 이름을 가진

실제의 섬이 있다고 한다. 어쨌뜬 이 이름 자체가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낯선 것은 사실이리라. 

나 자신도 내 아들이 코넬대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몰랐고, 또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이 이름이 입에 익기까지에는

다소의 시간이 걸렸다. 

 

- 코넬대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대학도시 이타카의 전경 - 산으로 둘러쌓인 도시의 풍경이 아름답다 -

              

이제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아들은 이곳에서 정말로 마지막 해, 마지막 가을을 자신의 부모인 우리 부부와 함께

보내고 있는 셈이다.

 

이곳에 와보니 그동안 말로만 듣던 바대로 정말로 조용하고 한가로울 뿐만 아니라 외로움을 느끼기까지 함을 알겠다.

아들은 정서적으로 대단히 예민한 놈이라고 이곳에서 유학하는 지난 5년간 여러번의 정서적 기복을 경험함으로써

부모가 긴장하도록 하였다.

물론 공부가 힘들고 어려운 것도 있었다. 정말로 많은 숙제와 과제 등으로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이곳의 학교 생활이다. 그런 가운데, 너무도 조용한 이곳에서 혼자 외롭게 유학생활을 감당했던 아들의 지난 시간들이

이곳에 와서 함께 있어보니 알듯하다. 그동안 외롭고 힘들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했었고

실제로 그 힘듬 때문에 한 학기를 휴학까지 했던 아들이었다.

이제 정말로 마지막 학기를 보내는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응원이 되고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바쁜 시간을 쪼개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마음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리라.

 

이곳의 가을풍경은 너무도 멋있다. 미국 영화같은 것을 보면 특히 동부의 멋진 가을 풍경을 보게 된다.

그럴 때 마다 동부의 가을 풍경을 꼭 보고 싶었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끝없이 물들어 펼쳐지 가을의 풍경...

더구나 큰 호수가 있고 그 호숫가의 나무와 숲들이 가을 색깔로 덮혀진 모습... 늘 보고 싶었던 풍경이다.

 

사실 나는 남부 캘리포니아 쪽에서 유학을 했고 또 우리 가족들이 그곳에서 한참을 생활했던 적이 있기에

그곳의 풍경은 대단히 익숙하다. 하지만 그곳은 기후나 자연조건이 이곳 동부와는 상당히 다르다.

이렇게 아름드리 경험할 수 있는 가을의 단풍이나 낙엽을 가까이서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캘리포니아에도 주변에, 또는 공원이나 산에 나무가 많이 있고 그곳에서 가을 풍경을 볼 수 있긴 하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이곳만큼의 날씨 조건이 다르며 나무의 량 자체가 많지도 않다. 그래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이곳 동부의 빽빽한 숲과 나무들과는 다른 것 같다. 이곳에는 비도 많이 온다고 하니 물을 많이 먹은

나무들의 넉넉하고 윤기있는 가을의 색깔을 서부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 같다.   

 

아뭇튼 나는 이번에 정말로 내가 보고 싶었던 동부의 가을 풍경을 만끽하고 있다. 그래서 너무 좋다.

이곳에는 카유가 레이크 (Cayuga Lake) 라고 하는 정말로 큰 호수가 있다. 이 도시는 호수를 끼고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서 큰 호수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오대호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곳의 호수는

그런 오대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규모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큰 호수다. 그저께는 그 호수로 산책을 갔는데, 마치 바다의 물결과 같은 파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호수가 크니까 물결도 그렇게 큰 것 같았다.

 

 

 

 

 

호수를 끼고 산 속으로 들어가니 큰 폭포가 있었다. 우리나라 제주도의 정방폭포니 천제연폭포와 같은 폭포를

연상하게 하는 거대한 폭포였다. 그 풍경이 장관이었다. Taughannock Falls라는 이름의 발음이 어려워

그 폭포의 이름을 기억하기도 어렵긴 하지만 정말로 멋있는 폭포였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고들 한다. 이제 50대 중반을 넘기고 있는 내 나이에서

젊음의 열정의 시기를 보내고 또 맹렬하게 살아왔던 지난 시절들을 뒤로 하면서

여름의 뜨거움이 언제였냐는 듯이 서늘한 가을 풍경을 예쁘게 장식하고 있는 이곳 미국의 동부, 이타카의

가을 풍경들을 보는 마음은 한없이 한가롭고 여유로와 좋다.

미래를 위하여 쉽없이 달렸던 지나간 내 젊음의 한 모습을 이제는 내 아들에게서 보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흐뭇하면서도 또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이곳에서 한가롭게 맞는 가을은 역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계절인가보다.     

이제 가을이 더 깊어짐에 따라 펄럭이는 단풍잎들이 떨어지면 이곳은 눈으로 쌓이는 겨울이 되겠지.

그 겨울이 되기 전에 우리는 떠날 것이다. 그래서 겨울 풍경은 보지 못하겠지만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이만큼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이 가을 풍경을 마음 속에 듬뿍 담아서 다음주에 우리는 귀국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