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고 했다.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이기는 길이라는 이야기다.
나는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나는 지금 잠시 한국을 떠나 미국의 동북부에 와 있다.
정확하게 미국의 동부인 뉴욕주의 북부에 와 있다.
이곳에는 코넬대학교 대학원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는 아들이 있는 작은 아파트가 있다.
우리들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도시, 인구 3만의 이타카(Ithaca)란 작은 도시에는
학생수 2만명 규모의 코넬대학교가 있으며 전체 도시 인구가 코넬대학교와
이런 저런 인연이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작은 전형적인 시골의 대학도시다.
뉴욕에서 자동차를 타고 4시간 정도를 달리는 동안에 변변한 도시라고는 하나도 볼 수 없고
오직 산과 나무만이 보이는 산골의 작은 시골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은 도시다.
이곳에 어떻게 이런 아이비리그의 세계적인 명문대학교가 있는지 한국적인 사고로는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 부부는 지난 월요일에 딸과 사위가 있는 뉴욕에 도착하였다.
인생은 수없이 많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장시간 태평양을 횡단한 우리는
지난 6월에 이곳 뉴욕에서 결혼한 딸과 사위, 그리고 아들을 만났다.
우리가 결혼식에 참가하여 떠났던 뉴욕에서 몇 개월만에 다시 반가운 재회를 한 셈이다.
그런데 그날 밤, 우리는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뉴욕 시내에서 저녁식사를 위하여
레스토랑을 향해서 가고 있었다. 얼마나 비가 많이 왔던지 고속도로의 물이 넘쳐서
교통이 심하게 정체될 정도였다.
얼마 전에 서울에서도 많은 비로 광화문 앞 쪽의 대로가 물난리를 겪은 일이 있었는데,
그때가 생각날 정도였다. 미국에서도 이런 풍경을 보니 뜻밖이라는 촌스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많은 비가 쏟아지는 동안에 하늘에서는 연신 번개가 치고 있었다.
이곳 저곳에서 번쩍이는 번개를 보면서 두려운 생각도 들긴 했지만 모처럼 보는 풍경인 것 같아서
일부러 차창밖으로 눈을 돌려 구경도 해보았다.
번개가 치는 하늘을 향해서 머리를 돌리고 있으면 연신 커다란 번개가 엄청난 밝기로 퍼지면서
불꽃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문득 누군가가 저 번개를 맞지는 않을까... 라는 방정맞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날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뉴욕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이 바로 그 번개를 맞았다고 한다.
화요일 밤에 인터넷 뉴스에서는 뜻밖에도 자유의 여신상의 횃불에 정확하게 번개가 내리꽂히는 장관이
너무도 선명한 사진으로 실려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아, 내가 그때 뉴욕시내에 있었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결정적인 장면 하나를 한국 인터넷 뉴스에서 발견하게 되어 괜히 반갑고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보면서 이 장면을 찍기가 얼마나 어려울텐데,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어느 한 사진 작가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기사에 의하면 이 사진은 뉴욕의 사진작가 제이 파인(58)이
두 시간 여를 기다린 끝에 80번을 찍는 가운데 극적으로 촬영됐다고 한다.
파인은 번개에 꽂힌 자유의 여신상을 찍기 위해 40여년을 기다렸으며
드디어 정확한 순간을 포착해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40년 동안 이런 장엄한 순간을 찍기 위해 노력했으며,
마침내 이 장면을 봤을 때 기절하기 일보직전이었다고 한다.
그는 “폭풍우가 오는 날이 좋은 기회처럼 보였다”며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를 알게 된 후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으며
마지막으로 “이런 순수한 행운을 거머쥔 것은 일생일대의 기회였다”고 말했단다.
사실 자유의 여신상은 매년 번개에 노출됐지만
이 사진처럼 선명하게 그 순간이 포착된 사진은 거의 처음이라고 한다.
준비하고 기다린 40년의 기다림이 결실을 본 것이다.
최근 칠레발 국제뉴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칠레 산호세 광산에서 지난 8월 5일에 붕괴사고가 발생하여 매몰되었다가
며칠 전에 69일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33명의 광부들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다.
사실 광산매몰 사고는 우리나라 뿐만 세계적으로도 가끔 일어나기에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번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나라의 경우에 1967년,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충남 청양군 구봉광산 125m 지하에 갇힌 채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먹으며
16일을 버티면서 구조되었던 광부 양창선씨의 사례가 생각났다.
그때 양씨가 구조되는 모습이 전국으로 TV 생계됨으로써 가슴뭉클했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이번 칠레의 경우는 그것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감동이 크다.
우선 매몰된 시간의 길이도 엄청나며 광부의 숫자 또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매몰 당시 작업반장을 중심으로 단결해 고난을 견뎌내면서도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 갈등과 분열, 절망을 경험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서로를 잡아먹는 식인(食人)에 대한 공포에도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생존자 중의 한 사람은 “생존 사실이 지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17일은 굶어 죽기를 기다리던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구조된 광부들 역시 기다림의 승리를 경험한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아들은 지금까지 만 10년간의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두 달 뒤인 12월이 되면 그의 모든 유학생활을 접고 귀국을 할 예정이다.
아들은 이곳 코넬대학교에서만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합해서 총 5년의 세월을 보냈다.
중학교때 한국을 떠났던 아들은 이제 12월이 되면 석사가 되어서 귀국을 하게 되어 있다.
아들은 지난 세월에 대해서 “정말로 지긋지긋한 10년이었다”고 한다.
나도 미국에서의 유학생활을 해본 터라 그 말의 의미와 뜻을 익히 잘 알고 이해하기에
그냥 웃고 어깨를 두드려 주면서 “그래 수고가 많았다.
언젠가 그 보람을 반드시 볼 것이니 이제 지난 일은 추억으로 돌리자”라고 격려를 하였다.
아직 내 아들은 인생의 결실을 볼 나이는 아닌 젊은 나이에 있기에
자신이 원하는 마지막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힘들고 고통스럽고 또 외로웠지만 긴 시간을 잘 견디면서
미래를 위해서 아들은 긴 준비의 기간을 잘 보내왔다.
그러니 언젠가 그 준비하고 기다렸던 시간에 대한 좋은 결실의 때가 오리라 믿는다.
잔뜩 흐린 금요일 아침을 맞는 이타카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코넬대학교의 흔적을 곳곳에서 느끼면서 새삼 기다림의 지혜를 다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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