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심리마당/최면

'길거리최면'에 대한 단상

설기문 2009. 9. 5. 13:08

'길거리최면(street hypnosis)'이란 최면가가 문자 그대로 길거리와 같은 공개된 장소에서

특정인에게 급속최면을 유도하여 재미있고 다양한 최면현상을 보이도록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와 재미를 주고자 하는 일종의 쇼최면, 또는 무대최면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이 길거리최면은 18세기 유럽에서 쇼맨이 길거리의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보다 재미있게 해기 위하여 메즈메리즘(mesmerism)을 사용한데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만약 최면사가 길거리에서 최면퍼포먼스를 하지 않았다면 최면은 어쩌면 수백년전에

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길거리최면의 중요성을 크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최면이라고 하면 임상최면을 생각하게 된다. 임상최면이란 치료를 위한 최면으로 흔히

최면치료라는 이름으로 대변되고 있다. 과거부터 최면은 주로 의사들이나 심리학자들에 의해서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자 의사였던 프로이드가 최면을 통해서

무의식의 세계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19세기 유럽에서는

최면이 치료를 위한 도구로 널리 활용되었다.

 

하지만 그 프로이드가 정신분석학을 창시하면서 최면을 포기함으로써 최면의 암흑기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정신분석 이후에 최면은 사양길로 접어들어서 서양에서 최면의 역사는

거의 사라질 운명에 처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면의 명맥이 그나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길거리최면을 포함하는 쇼최면가 또는 무대최면가가 비록 오락과 흥행을 위한 목적으로 하였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최면쇼를 행함으로써 가능했다.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서양에서도 과거에는 마땅한 오락거리가 없었기에 마술쇼, 서커스, 마당극과 같은 것은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을 수 있는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여기서 마술사나  흥행사들이

최면기법을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다양한 최면현상을 보여줌으로써 쇼의 흥미를 배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많은 지식인들은 길거리최면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길거리최면은

점잖지 못하거나 최면을 왜곡하는 것이라는 인식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클래식음악가들이

대중음악을 경시하고 순수학문의 전공자들이 응용학문이나 실용학문을 낮추어보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최면은 사람에게 유익되게 하는 것이고 사람을 살리는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에

길거리최면을 통해서라도 그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것은 훌륭한 수단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면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임상가들은 임상적 목적 외에는 최면을 사용해서는 안되고 그렇기 때문에

임상자격증이 있는 사람만이 최면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기도 한다. 그리고 최면을 정통으로

공부한 사람은 그런 쇼를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삶과 유리된 학문, 실생활과 무관한 예술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신라의 원효대사는 당나라라는 당시의 선진국에 유학을 하여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배우고 학문을 함으로써가 아니라 해골물을 통해서 깨침을 얻었다. 해골물 사건이후에 원효대사는

유학길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 스스로가 저자거리에 나가서 거지를

비롯한 빈민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부르며 그들과 실생활을 함께 하면서 도를 실천하고 민중을 도의 길로 이끌었다.

 

예수님 또한 성전에서 제자들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실천을 통하여 제자와 민중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하늘의 길을 가르쳤다. 그것은 부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결코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거룩한 모습으로 있으면서 가르치지만 않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생활속에서

직접 체험하고 경험함을 통해서 무엇을 배우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의미있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길거리최면은 바로 그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길거리최면의 일차적인 목적은

흥미와 오락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길거리최면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길거리최면의 유용성은 크다. 그것은 마술쇼, 서커스와 같은 것이 흥미와 오락의

기능을 다하는 것으로 좋은 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

 

함께 웃고 떠들고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것은 정신건강상 도움이 크게 된다. 오락을 통해서 일상의

스트레스나 긴장을 풀고 마음의 응어리들을 해소할 수 있다면 그 오락은 이미 치료적 효과를

발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놀이치료란 것도 생겼고 음악이나 그림, 연극, 웃음과 같은 것을 통해서

치료적 효과를 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음악치료, 그림(미술)치료, 연극치료, 웃음치료와 같은 것이

발달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마당극과 같은 것도 훌륭한 오락적 수단이 되지만 그 속에서 교육적 효과를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마당극은 기본적으로 권선징악과 같은 도덕적, 윤리적인 교훈을 담고 있으며 해학적인

풍자를 통해서 현실을 비판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풀고 보다 나은 바람직하고 건강한 삶의 비전을

제시하고자 하는 기능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정극이 아닌 마당극을 누가 무가치하다고 무시할 수 있을까?

길거리최면에서도 우리는 위에서 논한 효과와 기능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고 살릴 수 있다.

길거리에서 최면에 대해서 잘 모르는 대중들에게 흥미와 재미를 가미한 최면현상을 통해서

면의 신비한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최면이 결국은 우리의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과

최면을 통해서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일깨워줄 수 있다면 길거리최면을 보거나

경험하는 대중들은 단순한 재미 이상으로 교훈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최근에 나는 모 TV프로그램의 녹화 작업에 참여하는 가운데 대학로에서 길거리최면을 시도해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오픈된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최면을 하고, 지나가는 행인을 세워서 즉석으로

최면을 걸고 최면쇼를 하는 것이 흥미로운 작업임에 틀림없었다. 또 많은 행인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그 모습 또한 재미있는 풍경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낯설다고 할 수 있는 이 길거리최면이라는 퍼포먼스를 시도하는 가운데

나는 큰 사명감 비슷한 것을 느껴보았다. ‘이 길거리최면도 앞으로 제대로 발전시킬 가치가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되겠다라고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생각 이상으로 일반 대중들이 최면에 대해서

잘 못 알고 있고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길거리 현장에서 새삼 강하게 느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길거리최면을 좀 더 발전시킴으로써 대중의 최면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최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