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는 최면을 배우고 임상에서 적용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의 존재를 깨달았고,
그 무의식의 역할에 대해서 배웠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한 방법으로 최면법 대신에
자유연상의 기법을 개발하였고 정신분석학을 창시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그는 비록 최면을 통해서 정신분석학을 확립했지만 결과적으로 최면을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그 후의 최면의 역사는 일종의 암흑기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볼 때 결론적으로 프로이트가 최면을 포기했다는 사실은
최면 역사에서는 큰 후퇴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사실 프로이트가 최면을 사용할 때만 하더라도 유럽에서 최면은 특히 의사와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성행하였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의 창시 이후로 특히 20세기를 전후한 시기부터 최면에 대한 관심들은 급속히 식었고
명망있는 의사들이나 심리학자들은 최면 대신에 정신분석에 대한 관심을 높여갔다.
프로이트가 심리학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다.
그런 반면에 그로 인해서 최면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은 더욱 크게 만연하게 되었다.
프로이트의 영향력이 클수록 그가 버렸던 최면에 대한 인상은 부정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1890년대에 프로이트가 개업을 시작했을 때, 그는 브로이어와 함께 일을 하였다.
브로이어는 당시에 가장 뛰어난 의료최면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프로이트는 최면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으며,
실력이 빈약한 기술자(poor operator)였고, 치료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깊은 트랜스가 필수적이라는
그릇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상 10명중의 한 명 정도의 환자들만이 깊은 트랜스에 들어갔기에
그는 최면에서 좌절감을 맛보았다.
그에 비해서 브로이어는 훨씬 더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간에는 많은 라이벌의식이 있었고 프로이트는 그러한 상황을 잘 견디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하면서 최면을 포기하였다.
그 과정에서 자유연상과 꿈해석의 방법을 개발하게 되었다.
비록 프로이트가 인간의 마음과 심리치료에 대한 이론을 구축한 것은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가 최면을 포기한 것은 최면의 역사를 거의 50년이나 중단시켰기 때문에 불행한 (harmful)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정신의학자들과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최면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들은 최면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으며 프로이트가 처음에는 최면을 사용했지만
결국에는 그것을 버렸다는 이유로 최면을 무가치한 것으로 믿었다.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은 최면치료는 단지 증상이 없어지라고 암시하는 것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강하게 믿고 있다.
그래서 최면치료는 일시적인 효과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점은 이미 당시에도 베르넹을 비롯하여 많은 의사들에 의해서 부정되었다
(Cheek & LeCron, 1968, p. 18; Gilligan, 1987, pp. 5~6).
실제로 프로이트가 최면을 버린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이 그가 최면을 잘 하지 못하고
그는 최면에 소질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Shealy(1996)는 프로이트가 최면에 “소질이 없었다”(He was unskilled, p.112)고 하였으며
LeCron(1964)는 “서투른 최면사”(poor hypnotist, p.71)라고 하였다.
그리고 또한 “그의 최면 기법은 불행히도 직접적인 방법을 통하여 암시만을 사용하는 유치한(primitive)것이었다”
(Simpkins & Simpkins, 2000, p.19)는 평도 들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을 잘 알려지지 않은 채, 그가 최면을 버리고 정신분석학을 창시했다는 사실만 부각됨으로써
마치 최면은 무가치한 것이거나 최소한 정신분석학보다 못한 것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최면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영향력은 지금도 심리학계 전반에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최면은 이런저런 이유로 학문적으로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여
영국에서는 1950년에 미국에서는 1957년에 의학 분야에서, 그리고 1960년에 심리학에서 인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입견의 영향으로 인해 최면은 아직도 주류 학문사회에서는 소외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점들이 모두 ‘최면술’이라는 용어와 함께 사람들이 최면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게 하는 요인들로 작용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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