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문 칼럼

아침 산책길에 쏟아진 돈세례

설기문 2009. 3. 4. 12:00

이른 아침 운동삼아 우리 동네 산길을 걷는다.

겨우 내 미루어왔던 운동을 이제 3월을 맞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야 될 것 같아서

오늘도 역시 이른 새벽길을 걸었다. 날마다 할 일은 태산 같은데 늘 시간에 쫒기게 되고

그러다 보면 흔히 잠을 놓치게 되면서 건강에 대한 잔잔한 걱정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 가족끼리는 우리 동네를 산간지방이라 부른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냥 산 속에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과도 눈과 비가 내리는 양이 다르고 기온 역시

현저히 다름을 보면서 나는 산간지방에 살고 있음을 즐기게 된다.

 

새벽길을 걷는 기분은 아주 쾌적하다.

그 길을 걸으면서 마른 풀잎들을 보면서도 생각에 잠길 수 있고,

방금 고개를 내민 새싹들을 보면서 감격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시간이 참 귀하고 소중하다.

오늘 아침 역시 그 길을 걷는 내 눈 앞에 한 잎 한 잎 눈꽃이 날리는 것이다.

문득 올려다 보는 하늘에는 온통 흰 눈이 가득했다. 한순간 나는 감격스러운 마음이 되면서

그 눈잎들을 하나 하나 정성껏 지켜 본다. 동화속의 소년같은 기분으로 나는 눈 내리는

아침 산책길에서 아주 오래전에 경험한 황홀한 기억을 떠 올려 보게 되는 것이다.

 

문득, 길을 걷다 아무도 없는 은밀한 곳에서 길 위에 떨어진 돈을 주워 본 적이 있는가?

여기서 그 돈을 파출서에 갖다 줘야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자.

길 위에 동그마니 떨어져 있던 어린 시절의 동전, 일원, 십원, 백원, 그리고 세월이 흘러

천원권 지폐, 또 만원권 지폐로 그 돈의 가치는 상승을 하면서 우리도 나이를 먹어온 것이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살던 우리 아파트에서 세탁장으로 가는 길에 떨어져 있던 몇십 달러의 돈을 주워본 적이 있다.

식구들이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공동세탁장) 돌아오는 길에,

길위에, 길 가 화단 주변에 파랗게 떨어져 있던 달러를 보면서 우리식구들은 한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저물어가는 저녁시간 고즈녁한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그 미국돈은 우리에게 그 날 밤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밤 늦게까지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 하고 의논하고 또 의논하는 즐거움을 우리는 누렸고,

며칠 뒤 그 30여 달러의 돈으로 우리는 외식을 했다.

온 가족이 그 기쁨과 잔잔한 감동을 경험했던 것이다.

 

그 이후 얼마 전 이북에 있는 동포들에게 모 기관에서 돈삐라를 뿌렸다는 신문기사를 보면서

나는 그 순간 미국에서 만났던 그 길위의 지폐를 떠 올렸다.

아마도 이북의 동포들 역시 그날 우리 가족이 경험한 것 보다 더 큰 기쁨으로 그 돈들을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내리는 눈발을 보면서 갑자기 길에서 횡재를 하는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천지를 하얗게 덮고 내리는 눈이  갑자기 내 눈에는 시퍼런 달러의 모습으로 보이게 되고

나는 한순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천지에 내리는 돈을 온 몸으로 받는 상상에 빠진 것이다. 신나는 일이었다.

이미지 트레이닝이 별것이든가? 자기최면이 별것이던가?

나는 그 짧은 시간에, 그 엄청난 돈 세례 앞에서 황홀했다가, 그 순간의 기억들을 앵커링 시키기 위해

내 소중한 마음의 비밀창고 속에 담아 두었다.

특별한 아침이 되었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자기최면을 걸면서 나는 ‘시크릿’에서 이야기되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적용해 본다. '

끌어당김이란 결국 자기 최면이며 선명하게 뇌 속에 각인시키는 이미지 트레이닝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싶다.

눈 내리는 아침의 행복한 기억을 더듬으며 오늘 하루 내내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