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에 들어 최면현상을 과학적으로 밝히고자 하는 노력들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연구자와 임상가들이 최면의 발전에 기여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메스머
오스트리아 출신의 의사 메스머(Friedrich Anton Mesmer : 1734~1815)는
최면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으로 기록되고 있다.
첫째, 그는 ‘최면의 아버지’ 세 사람 가운데 최초의 인물로 인정되고 있고(나머지 두 사람은 뒤에서 설명할 브레이드와 리보이다). 둘째, 자신의 최면작업을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했으며,
셋째, 오늘날 영어에서 최면을 ‘히프노시스(hypnisis)'란 용어와 함께
그의 이름을 딴 ’메스머리즘(mesmerism)'이라고도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최면 몽환(夢幻)상태, 즉 트랜스(trance)상태를 사용하지 않았고,
최면의 토대를 완벽히 구축하지는 못했으며, 오늘날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빈을 중심으로 활동한 메스머는 이른바 동물자기설(動物磁氣設)을 주장했다.
그는 ‘우주 유동체’가 자석과 같은 비생물체에 저장되어 있다가 환자에게 전이되어 병을 치료할 수 있으며
사람의 몸에서도 자기(磁氣)가 작용한다고 믿었다.
후에 동업자의 박해를 받아 파리로 이주한 그는 유수한 과학자들을 초청하여 자신의 작업을 직접 보여주며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자 했지만 반응이 시원치 않아 좌절하기도 했다.
드퓌세귀르
메스머와 같은 시기에 여러 제자가 그의 이론을 발전시켰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프랑스의 마르키스 드 퓌세귀르(marquis de Puységur : 1751~1825)이다.
그는 ‘우주 유동체’가 자성을 띤 것이 아니라 전기적인 것이며,
이 전기적 유동체는 모든 식물과 동물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치료를 위해 환자에게 ‘치유 전기 유동체’를 보내주고자 했는데,
이 유동체가 자연환경 속에 많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의 치료실은 주로 야외가 되었고, 특히 마을의 녹지대 중앙에 있는 느릅나무 밑에서 치료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드 퓌세귀르는 한 환자를 치료하다가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즉, 환자가 ‘메스머화’된 결과로 깊은 수면상태와 유사한 몽유병적인 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 상태에서 환자는 여전히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고 시술자의 암시에도 반응을 보였다.
결국 그는 트랜스 상태를 처음으로 발견한 셈이었으나,
정작 자신은 그것이 트랜스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드 퓌세귀르는 의학사상 처음으로 질병에 대한 진단을 실시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그가 육감을 통해 진단을 했다는 점이다.
가스너
메스머와 같은 시기에 활동을 한 인물로 독일 출신의 가스너(J.J/Gassner: 1727~1779)라는 신부가 있었다.
그는 암시를 이용한 최초의 현대적 신앙요법가로 인정받고 있다.
어느 날 그는 의사 두 명을 초빙하여 한 여성 피험자의 심장박동과 호흡수를 떨어뜨리는 최면시범을 보였는데,
이 광경을 처음으로 본 의사들은 피험자가 죽었다면서 놀라워했다.
그러나 가스너는 3분 후에 피험자를 깨웠고, 이 일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그가 속한 교구에서도 최면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는 하늘에서 신통력을 받은 사람으로 알려지면서 다른 선구자들에 비해 유리한 여건에서 최면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주로 희미하게 촛불을 켜놓은 성당에서 피험자들로 하여금
다이아몬드가 박힌 십자가를 들고 빙빙 돌면서 “잠자라.”는 라틴어를 중얼거리게 함으로써 트랜스 상태를 유도했는데,
이 방법은 꽤 효과를 발휘했다고 한다.
이로써 그는 최면에서 ‘조용히 잠자는 상태’를 이끈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드 패리아와 엘리엇슨
1815년에는 프랑스의 드 패리아(Abbe de Faria: 1756~1819)라는 사람이 과학적 실험을 통해
심리적 태도가 최면과 관계가 있으며 피험자의 의지에 반해서는 최면을 걸 수 없음을 최초로 밝혀냈다.
엘리엇슨(John Elliotson: 1791~1868)은 대학병원의 교수로서 런던의 저명한 의사이기도 했는데,
1837년에 최면실험을 시작한 이후 최면 트랜스를 이용한 무통(無痛)수술이 가능함을 발견했다.
치료에는 고통이 필수적이라고 믿었던 많은 동료의사들로부터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비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계속 자신의 기법을 활용하자 많은 젊은 의사들이 그를 따랐다.
그는 암시를 통해 무통 수술뿐만 아니라 직접 치료도 가능함을 밝혔고,
트랜스 진단과 예언을 하는 실험도 실시함으로써 최면을 의료에 도입하는 선구자가 되었다.
브레이드
이 시기에 영국의 또 다른 외과의사인 브레이드(James Braid : 1795~1869)는
메스머가 주장한 자기학(磁氣學)의 원리에 대해 최초로 과학적인 실험을 하고 설명을 가했다.
‘메스머리즘은 곧 신경성 수면’이라고 생각한 그는 1842년에 잠을 뜻하는 그리스어 ‘hypnos’에 기초하여 ‘hypnosis’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이로써 그는 오늘날 최면을 ‘메스머리즘’과 ‘히프노시스’의 두 가지로
부르게 만든 주인공이 되었으며, 메스머와 함께 ‘최면의 아버지’로 인정받게 되었다.
환자들이 언어적으로 표현되는 암시에 민감하게 반응함을 알게 된 그는 최면현상을 과학적으로 밝히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메스머의 ‘우주 유동체설’을 부정하고 대신 눈의 피로가 시신경을 마비시킴으로써
수면과 같은 최면현상을 야기할 수 있음을 밝혀냈으나,
그의 이러한 노력들 역시 보수적인 등료들로부터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에스데일
비슷한 시기에 인도에서는 에스데일(James Esdaile : 1808~1859)이라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외과의사가
스스로 ‘자기적(磁氣的)수면’이라고 이름붙인 최면상태에서 수술을 실시함으로써
최면이 과학적으로 인정을 받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인도에 있는 동안 엘리엇슨의 글을 통해 메스머리즘에 관심을 갖고
수천 회의 소 수술과 300회의 대수술을 최면을 통해 통증 없이 시행했다.
다행히 이러한 업적이 의학협회로부터 인정을 받아 그는 켈커타 병원으로 파견되었고,
그곳에서 계속 최면수술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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