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심리마당/빙의치료·전생치료

전생퇴행과 전생치료, 어디까지 믿어야하나?

설기문 2008. 11. 21. 11:56

전생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설기문교수는 누구에게나 전생이 있고 그 기억을 찾아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전생에 대해 호기심을 갖다가도 실제로 그것을 꼭 믿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부담감과 함께

혼란을 느끼는 듯하다. 또한 전생에 관한 내용이 기존에 알아왔던 지식이나 믿어왔던 종교적 가치

혹은 교리와 다른 데서 오는 갈등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전생을 꼭 믿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전생의 존재 여부든 전생기억의 사실성 여부든 쉽게 증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마치 신이 존재하느냐 하는 문제와 비슷하다.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은 증명 여부와 상관없이 주관적인 경험으로, 또는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증명’해 보여도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법이다.

결국 전생의 존재 여부에 대한 논쟁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최면상태에서 떠올린 기억의 내용을 과연 전생의 기억이라고 믿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이는 사실 전생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라야 제기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생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러한 ‘기억’이 단지 어릴 때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떠올린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비록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장소나 접해보지 않은 것 같은 내용을 떠올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의식할 수 없었을 뿐 언젠가 실제로 보았거나 읽었거나 들었던 내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직접경험이든 간접경험이든 어릴 때의 경험들이 잠재의식에 반영되어 있다가

 최면상태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유명한 영능력자인 에드가 케이시(Edgar Cayce)가 수천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행했던 영독(靈讀) 사례를

비롯한 많은 ‘증거’와 국내에도 일부가 소개된 여러 가지 자료들은 전생의 존재를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생퇴행에서 나오는 내용을 모두 ‘전생경험’이라고 믿어야 할까?

과연 전생퇴행 동안에 환상이나 작위적인 생각이 개입될 가능성이 전혀 없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러한 의문에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

사실 전생퇴행 동안 전체적으로든 부분적으로든 환상이나 작위적인 생각이 개입될 가능성은 상존한다.

그렇기에 전생퇴행에서 경험한 내용을 무조건적으로 믿거나 믿기를 강요해서는 곤란하며,

경험 내용을 신중하게 분석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진지하고 사려깊은 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전생경험을 절대화하지 말고 일단은 ‘주관적’인 경험으로 간주하여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찾고

그것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며 치료와 성장을 위한 도구로 삼을 것을 권한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법한다.

 

“그처럼 전생퇴행에서 기억해낸 내용들이 전부이든 일부이든 ‘진짜’ 전생경험이 아닐 수도 있다면,

과연 어디까지를 사실로 받아들여야 할까?”

 

이에 대해서는 솔직히 필자도 자신있게 선을 그어 “여기까지가 사실이고 저기까지는 환상이다.”하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동안의 임상경험에 의할 때, 내담자가 제대로 최면에 걸리지 않았거나 최면에 들어가기 전

혹은 최면중이라 하더라도 특정한 심리에 집착하여 특정한 방향으로 휩쓸려갈 때를 제외하고는

경험의 내용을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도 좋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내담자가 경험한 것이 실제냐 아니냐를 따지기 전에, 그가 얼마나 순수하고 진지하게 최면에 임하고 있는지,

그리고 정말 최면에 제대로 걸려 있는지 하는 차원에서 내담자를 관찰하고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은 어떨까?

 

“어쩌면 전생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개념’에 불과한 것인데,

그것을 ‘사실’로 상정해 놓고 그에 따라 이론을 세우고 치료를 하려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은 대답하기가 상당히 힘든 것임을 전제하면서,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반문해 볼 수 있다.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 사람들은 신이 존재한다고 믿음으로써 절대자를 의지하고 그를 통해 위로를 얻으며

내세를 소망하면서 현세의 고통을 견디고 선하게 살기 위해 노력을 하는 데 도움을 얻고 있지 않는가?”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의식’이니 ‘무의식’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생각을 해보자.

그것은 과연 실존하는 것일까?

 대표적으로 행동주의 심리학에서는 의식이니 무의식이니 하는 추상적인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런 것은 허황된 개념에 불과하며, 증명할 수 없고 관찰할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 대신에 객관적이고

외형적인 ‘행동’을 연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이러한 반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의식이나 무의식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그러한 개념들을 전제로 삼음으로써 인간의 심리현상이나 정신세계를 좀더 쉽고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여러 전문가들의 견해와 마찬가지로 전생의 존재 유무와

전생기억의 사실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굳이 전생의 존재를 믿고 주장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전생퇴행에서 경험하는 내용들이 단순히 어릴 때의 경험을 기억해내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면상태에서 떠올리는 기억들 중에는 현생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내용이 많고,

이런 경우 전생의 경험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둘째,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나 질병, 각종 인간관계의 양상 가운데

전생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설명이 되지 않는 현상이 많을 뿐만 아니라, 전생을 전제로 함으로써

다른 방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던 많은 인생의 문제들이 쉽게 설명된다는 점이다.

또한 그것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고 치료와 성장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전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필자의 개인적인 임상경험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많은 전생치료자나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결국 전생이 실제로 존재하든 안 하든,

그리고 그것을 믿든 안 믿든 전생상담 혹은 전생치료를 통해 실제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으며, 바로 이 점이 우리가 전생과 전생 치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