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문 칼럼

제대로 죽기 위하여.,...

설기문 2008. 6. 4. 15:53

 

 

잘 죽는다는 말은 잘 산다는 말만큼 어려운 말인 것 같다.

요즘 들어 온 나라가 시끄러운 이유중의 하나가 광우병 문제인데, 자세히 살펴 보면

그 두려움의 밑바닥에는 죽음에 자연스레 이르고 싶은 본능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광우병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영상들은 우리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 같다.

이야기가 조금은 엇나가는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죽음을 제대로 자연스럽게, 혹은 추하지 않게, 공포스럽지 않게 맞이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내가 어릴 적 살던 우리 고향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객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누군가가 타향에서 삶을 하직하거나, 혹은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객사에 대해서

많이 놀라고 가슴 아파했으며 죽을 복이 약해서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을 들으며 자랐다.

 

며칠 전 티비를 통해 미이라에 관한 보도를 보았다.

500여년 전 조선시대의 여성으로 짐작되는 미이라 였었는데

특이한 것은 그녀가 만삭의 임산부였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특별계층 소속이었음을 입증하는 화려한 비단옷과 그 옷을 지은 실마져 금사였다고 .....

화면으로 보기에도 그녀의 머리카락은 살아있는 사람의 그것과 같이 빛이 났으며

손톱 발톱 역시 대단히 사실적으로 남아있었다.

미이라를 정밀하게 관찰한 결과 그녀는 해산을 하는 과정에서 자궁이 파열되고 태아는 아마도 산소부족으로

숨을 거둔 것 같으며 먼저 태어가 죽었음을 확인한 산모 역시 삶을 포기하고 숨을 거둔 것으로 분석되었다.

 

죽은 그녀의 시신은 대단히 화려한 치장으로 하고 매장이 되었지만

그녀의 삶에 대한 미련인지, 아쉬움인지, 아니면 어떤 땅속의 환경적 요인이 작용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죽어서도 이 승에서의 삶을 놓지 않고 있는 듯 보였다.

나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녀가 이승을 훌훌 털고 떠나기엔 너무나 많은 아쉬움이 남아

누군가에게 의지하여 지금도 살아가고 있지나 않을까 싶어지는 것이었다.

삶과 죽음은 결코 서로 멀리 격리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사실은 이보다 더 멀고 먼 길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잘 죽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하는지,

잘 살아가야 잘 죽어갈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죽음이 목전에 다가왔을 때 어떤 심정으로 이 세상을 떠날 것인가에 관한

내 마음의 정서가 아닐까 싶다.

그 한순간을 위하여 우리는 부단히 생각하고 일하고 감정을 경험하고 행동을 하며

생각에 생각을 하며 아파하고 슬퍼하는 것은 아닐까?

날마다 빙의문제에 부딪치고 빙의로 인한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들과 마주치며 일하는

나는 삶과 죽음이 때로는 가까운 것 같고, 때로는 너무나 멀어 도저히 만날 수 없고

확인할 수 없는 양쪽 세상이 안타까워 발을 구르고 싶을 때가 많다.

 

잘 산다는 것,

잘 죽는다는 것에 대한 화두가 오늘도 내 맘 한 가운데 남아서

내게 생각, 또 생각을 하게 한다.......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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