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에 돌아가신 나의 은사님의 추모일을 맞아 제자들이 함께 모여 추모의 정을 나누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자리에서 선생님을 추모하는 글을 하나 써서 발표를 해달라는 요청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과의 인연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내가 상담전문가가 되도록 하고 오늘의 나 자신이 있게 하신 분, 그 분은 바로 나의 스승님이신 이형득 박사님이시다. 그 분과의 인연은 아주 우연하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우연한 시작은 큰 인연으로 이어졌고 나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지금부터 21년전, 16세의 소년
인연이라고 하면 얼마전에 97세의 나이로 작고한 수필가 피천득이 생각난다. 그의 유명한 수필집 ‘인연’에서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고 말했다. 피천득이 말한 이 인연은 슬프고 가슴 아픈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끼리 늘 함께 하면서 행복을 나누는 인연도 있고 서로에게 축복이 되고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인연도 있다. 우리의 삶에서 후자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내가 아내를 만난 것, 그것 또한 아주 우연이었다. 내가 상담을 전공하게 된 것 또한 아주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내가 NLP를 공부하고 최면을 학습한 것 또한 아주 우연한 상황에서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그렇게 본다면 그 우연한 인연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필연이라고 생각된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인연이 아니었을까?
사실 나는 캐나다의 어느 대체의학박람회에 구경갔다가 우연하게 만난 NLP로 인해서 나의 인생은 크게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연하게 들었던 최면강의가 인연이 되어 결국 최면전문가가 되었고 그것으로 인해서 나의 인생 또한 많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 그러한 인연은 우리의 인간관계와 삶에서 얼마든지 경험되고 찾아볼 수 있다.
당연히 인연에는 좋은 인연이 있고 나쁜 인연이 있다. 그리고 처음에는 좋게 보이는 인연이 시간이 지나면 나쁜 인연으로 결말이 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인연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아주 우연한 그리고 작은 인연이 역사를 바꾸기도 하고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현재의 나는 부모님이 서로의 인연에 의해서 만나고 결혼한 결과이다. 지금의 나가 내가 바라는 모습이라면 부모님께 감사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부모님을 원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못난 모습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내가 만든 나의 탓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아무리 좋지 않은 여건과 환경들 또한 하나의 핑계거리가 되고 원망의 대상은 될지 모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극복대상이 아닐까?
누군가 나를 만난 인연으로 그의 인생이 좋은 쪽으로 바뀌고 행복한 삶의 확률이 높아진다면 좋은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늘 그러한 인연을 만들면서 살아가기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왕이면 더 좋은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가치있는 삶이 될 것이다.
오늘도 나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상담실에서 새로운 내담자를 만나면서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어간다. 나와의 인연으로 인해서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원하면서 … 마치 나의 스승님과의 만남이 나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고 삶을 바꾸었듯이 나와의 인연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삶이 바뀌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기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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