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문 칼럼

연예인 자살사건들을 바라보며 생각해보는 삶

설기문 2008. 10. 4. 12:03

가을이 점차 가을다워지고 있다.

지난 9월도 가을은 가을이었지만 지구 온난화때문인지

여름의 연장으로서의 초가을 날씨에 뜨거운 햇살의 더운 날씨가 계속되었다.

물론 아침 저녁으로는 조금씩 서늘해졌지만.

그런데 이젠 낮의 바람도 예사롭지 않다.

빛은 여전히 따갑지만 서늘한 바람의 감촉이 가을임을 실감나게 한다.

 

나이를 먹는구나...

라고 실감하는 것은 어쩌면 계절을 의식할 때부터가 아닐까?

아니, 나이를 먹음에 따라 계절을 의식하는 것이 아닐까?

어느 말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계절이 의식되는 것을 보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은 틀림없나보다.

 

나이를 많이 먹는다는 것은 앞의 일을 설계하기 보다는 뒤의 일을 되돌아보는

일이 많아짐을 의미하는 것 같다.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즐거웠거나 행복했던 일보다는 후회스러운 일,

아쉬운 일, 안타까웠던 일들이 더 많이 생각나는 것.....이 더 많다면..

어쩌면 그것 또한 나이를 더 많이 먹어가는  징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침 저녁 뿐만 아니라 낮에도 느껴져오는 서늘한 바람 속에서

곧 겨울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쓸쓸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봄 같으면 따뜻함과 함께 더운 여름날을 생각하게 되고

봄날의 따뜻함 속에서 오히려 생기와 활력을 느끼게 되는데, 

아무래도 가을과 겨울은 왠지 몸이 위축되는 느낌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것 또한 나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연예인의 자살 소식....

그것도 며칠 전에 발생한 최진실씨의 사건은 많은 사람들을 충격속에 빠뜨렸지만

그 사건을 접했을 때 나 또한 놀란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 인생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녀는 깜찍한 외모로 많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즐거움'을 주었고

또 당대의 톱스타이면서도

남다른 인생역경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동정을 샀던 이유가 크게 작용했으리라.

 

진부한 표현이지만 '생의 덧없음' 과 '인생무상'을 새삼 느끼게 된다.

언젠가 유명한 모 여의사가 자살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또한 비슷한 것을 느꼈다.

어느 생명이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어디있으랴만...

특히 유명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을 보면서 더더욱 그러한 덧없음과 인생무상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모델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사람들을 통해서 대리적으로 느끼는 것이 많기에 그들의 삶의 행적이나 희노애락적

경험들의 영향력은 큰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영원히 살 것' 같은 자기최면속에서 살아간다.

만약 우리가 내일 죽는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삶의 모습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내일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

비록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조차도 말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내일 전혀 예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죽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그럴 때 당황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영원히 살 것이라는 암묵적인 기본가정을 하면서 사는 것은

어쩌면 큰 축복일 것이다.

바로 그러한  자기최면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역경이 내 앞에 있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 아닐까?

 

만약 우리가 내일 죽는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힘든 일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어려운 역경 앞에서 그것을 이기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그러나 영원히 살 생명이고 목숨이기에 인생의 굴곡 앞에서 힘들고 외롭지만

이겨 나가기 위하여 눈물어린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자기최면은 참으로 훌륭한 약이면서 치료제가 될 것 같다.

 

나는 상담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고통을 접하는 가운데

자살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내가 젊었을 때는 자살하는 사람들과 관련하여 "그렇게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살아간다면

무엇을 못할까?"라고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나 역시 역경을 겪으면서 인생의 골짜기를 걸어봤을 때, "오죽했으면 하나뿐인 목숨을 던질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 그래서 실제로 자살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나이를 더 먹으면서 삶을 다시 생각해볼 때, 자살하는 사람의 마음을 더더욱 이해할 것 같다.

"오죽 힘들었으면 그렇게 자신을 버릴까? 고통의 정도가 목숨을 던질 만큼 컸다는 것을.... 정말로

힘들고 고통스러웠나보다...." 그런 의미에서 자살한 사람에게 동정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최면치료를 하고 또 전생치료나 빙의치료를 하는 입장에서 볼 때, 그 자살의 문제가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는 결론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임상 경험을 통해서,

어쩌면 자살은 또 다른 자살을 부를 수 있다는 수많은 사례를 보아왔기에

이번 최진실씨의 자살 사건은 예사롭게 와 닿지 않는다.  

이번 최씨의 사건이 얼마전의 안재환씨의 자살에 연이은 사건이기에,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마음도 그래서 남다르다고 하면 지나칠까?

 

그렇다면 앞으로 정선희씨는 어떻게 될까? 또 이영자씨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진실씨가 남기고 간 두 아들은 또 어떻게 될까?

.......  나쁜 일들의 악순환이 이제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으며 좋겠다는 생각들..... 

기우로 그치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그리고 자살자들의 마음의 상처나 아픔이 얼마나 컸을까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싶고 또 명복을 비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면서도 가까운 남은 이들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 또한

나만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인생... 다시 생각해봐도 무상한 것은 틀림없다.

우리의 삶.... 결코 영원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영, 영적인 에너지들은 영원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을 구성하는 몸, 마음, 그리고 영....

이 세번째의 영은 영원히 이어질텐데.... 그 영적인 부분의 문제들은  어찌할 것인가?

그렇게 본다면 '인생무상'이라는 말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 말의 진의는 충분히 납득을 하면서도 말이다.

 

비록 현실적으로 인생무상이긴 하지만

영적인 부분의 삶은 결코 무상하지 않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만약  영의 차원이 결코 무상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인생무상이라는 말에 대해서 좀 더 다른 의미 부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새삼, 인생무상이라는 말과 함께 영원히,  영원할 영을 생각해본다면

어쩌면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라도 좀 더 힘을 내고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가 어려운 역경 앞에서 굴하지 않고,

영원히 살 것 같은 자기최면 속에서 인내하고 극복할 수 있듯이....

영의 영원성을 생각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자고 마음으로 다짐하고 실천한다면

우리 삶은 더욱 더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보면서 가을과 함께 심란한 마음으로 시작한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