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설기문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에릭슨은 처음에 전통적 최면을 공부하고 실천하였다. 그는 위스콘신 대학교 2학년마지막 시기에 유명한 심리학자인 Clark Hull로부터 최면을 배웠다. 그의 최면에 대한 열정은 너무도 컸기 때문에 학기가 마친 후인 여름 방학때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최면실험을 하였다. 미국의 학교 제도는 가을학기부터 새 학년이 시작되어 다음해 5월말~6월에 학년을 마치고 곧 바로 여름방학에 들어가며 또 8월말 또는 9월 초부터의 가을학기때에 새 학년이 시작되는 제도이기 때문에 에릭슨이 2학년을 마쳤을 때 곧 바로 여름방학을 맞게 되었다. 그는 여름방학 동안에 자신에게 협조해주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최면을 걸어보았고 그 결과를 정리하여 다음 학기인 가을학기 즉 3학년 첫 학기 때 Hull 교수의 최면세미나 시간에 발표를 하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의 최면에 대한 경험과 결론은 Hull과는 달랐을 뿐만 아니라 차이가 많이 났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Hull의 최면은 전통적 최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Hull은 최면에 대해서 현대 과학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그의 최면은 객관적이며 실험적인, 그리고 표준적인 방식으로 유도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방식으로 최면유도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개인차라든가 개인의 특성과 같은 것은 고려되지 않았다.
그러나 에릭슨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무엇보다도 개인의 특성과 개인차를 중시하였다. 그리고 개인의 주관적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개성과 행동특성, 그리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특성들을 갖고 있기에 실험실의 쥐를 대상으로 실험하듯이 객관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취급해서는 안된다고 에릭슨은 생각하였다.
이러한 그의 생각에 기초하여 에릭슨은 후에 독자적인 비지시적이며 허용적인 최면법을 개발하였고 그 결과 특정한 ‘형식적’ 최면 유도 없이도 일상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내담자를 트랜스(trance) 상태로 유도하는 독특한 최면적 의사소통법을 사용하였다.
트랜스 상태란 몽환 (夢幻)상태를 말하는데 이완과 집중이 극대화되면서 무의식이 활성화되어 최면치료가 이루어지는 일종의 변형된 의식상태(altered states of consciousness)라고 할 수 있다.
에릭슨 최면법은 비지시적 최면법으로도 불리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내담자의 내적 자원이나 긍정적인 내적 상태를 근거로 최면적 의사소통을 통해 내담자를 간접적으로 트랜스 상태로 유도하는 특성 때문에 일반적인 심리치료나 상담 장면에서도 쉽게 활용가능하기에 급속히 보급되었다. 특히 NLP의 발전과 보급으로 인해 에릭슨 최면법은 크게 알려지게 되었다.
전통적 최면에서는 최면의 경험을 특별한 경험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특정한 방법으로 최면유도를 하여 형성되는 특수한 내적 상태를 최면상태로 본다면 에릭슨최면에서는 그보다 훨씬 포괄적인 차원에서 최면을 생각하였다. 에릭슨은 사람은 누구나 일상에서 수없이 많은 최면경험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여기서 최면경험을 트랜스란 말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에릭슨은 '흔한 일상의 트랜스' (common everyday trance)라는 말을 통하여 최면경험의 보편성이나 일상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누구나 매일 경험하는 경험으로서 어떤 대상에 대해 집중하거나 몰입할 때, 또는 이완되었을 때 경험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특히 고속도로를 자동차 운전하고 갈 때 살짝 졸린다거나, 책을 읽을 때, 영화를 볼 때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몰입한다거나,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느라 옆에 누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친다거나, 또는 과거의 어떤 추억을 생각하느라 멍하니 있으면서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주변에서 어떤 일이 생겨도 눈치를 채지 못하는 일 등이 모두 그러한 흔한 일상의 트랜스 경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최면이란 것은 결코 멀리 있지 않으며 특별한 사람만이 경험하는 것이 아닌 누구나 일상에서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가 그러한 일상의 경험에 대해서 잘 모르며, 동시에 개발하면 큰 가치를 지닌 트랜스의 활용 원리를 모른 채 지나칠 뿐이다. 그러므로 에릭슨은 우리에게 금광이 어디 있는지를 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금을 캐는 방법을 가르쳐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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