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례

대인공포와 시선공포, 대인기피증의 우리들의 딸 이야기

설기문 2009. 12. 9. 12:16

그녀는 이제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었다.

유복한 집안에서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 속에서 착하고 여린 심성을 가지고 잘 자랐다.

그런 그녀가 중학교 2학년 때 부터 사람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수줍음이 많고 목소리가 가녀린 그녀는 집안에서는 언제나 공주처럼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대문을 나서기가 두려울 정도로 심한 대인기피 현상을 보이고 있었기에

학교를 휴학하고 정신신경과 병원을 전전하며 약물에 의존하여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다고 했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심리상담을 받으러 온 그녀는 상담자의 질문에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불안한 마음에 자꾸만 가슴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엄마에게 살짝 귓속말을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식과 남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헌신적인 엄마이며 아내였으며

가족들도 그녀를 많이 의지하고 서로 사랑하고 있다고 한다.

위로 오빠가 있었기에 이쁜 딸로 태어난 그녀는 언제나 지극한 보호를 받으며 성장했는데

결국은 그게 과보호였던 것이다.

초등학교때는 바로 집 앞에 학교가 있었기에 학교와 집을 오가며 그녀는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무리없이 학교 생활을 했지만 중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언제나 학교 정문까지 등교길에 자동차로 데려다 주는 엄마,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면 항상 교문 밖 자동차 안에서 기다리는 엄마,

그녀의 그런 모습은 많은 친구들의 눈에 쉽게 뜨이게 되었으며,

그녀는 마마걸이라는 별명을 얻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입학을 하면서부터  그녀는 왠지 친구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친구들이 중학교를 가게 되면서  초등학교 때와 달리 대화의 내용이나 질이 달라졌으며

연예인 이야기나 학원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집에서 TV 프로그램에 크게 노출이 되지 않은 그녀는

그 부분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어려웠으며,

학원 대신 전과목을 집 안에서 전문과외 교사를 통해 수업을 받게 된 그녀는 왠지 혼자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친구를 사귀기 위해 노력했지만 왠지 친구가 가깝게 느껴지지 않게 되었으며,

환심을 사기 위해 자신이 가진 물건이나 학용품 등을 주기도 하면서 잠깐 잠깐의 친구는 얻었지만

결국 그 시간이 그리 길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불량학생으로 통하는 아이들이 그녀에게 접근해 왔고,

돈을 요구하거나, 때로는 그녀의 집에 들러 옷을 빌리러 오기도 하는 등의 방식으로 그녀는 친구를 얻긴 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그들로부터 제대로 된 친구로 인정 받지 못했고 끊임없이 돈을 요구 당하는 입장에 놓였으며

마지막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자신이 가진 통장의 모든 돈을 그녀들에게 건네주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자 마자 바닥이 난 그녀의 통장에서는 더 이상 돈이 나오지 않게 되었고

방법이 없음을 알고 난 뒤 결국 엄마에게 실토를 하고

그 이후로는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엄마가 그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좋은 말로 설득하고 달랬지만

그녀는 집단 폭행을 당하고 학교를 접을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학교를 전학하고 정신신경과 약을 복용하면서 겨우 중학교 졸업을 할 수 있는 출석일수를 채우고

그녀는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자마자 대인공포가 극심해져 휴학을 하고 쉬고 있다는 것이다.

 

대문 밖을 나서지 못하는 그녀,

그녀를 폭행하고 돈을 받아 간 친구들까지 그리울 정도로 그녀는 외로움도 크다고 한다.

차라리 계속 돈을 주기나 하지,

왜 친구들을 만나서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부모를 원망하는 마음도 크다고 한다.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사람처럼 정신신경과 병원과 집만 맴돌며 살고 있다고....

 

참 안타깝다.

상담을 하는 도중에도 몇 번이나 그녀는 함께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엄마는 계속 눈시울을 적시며 아이를 너무 연약하게 키운 자신을 탓했다.

우선은 내담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시간을 서너차례 보냈다.

그 이후 그녀는 조금씩 마음을 열고 다가왔다.

마침내 그녀는 어느 순간 마음을 활짝 열었으며 지나간 과거 시간들에 대한

기억 지우기와 분리작업을 통해 악몽같았던 시간들을 지워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미래를 향한 전략을 준비하며 트랜스 행동치료에 임했다.

그녀는 두 달 동안 지속적인 상담과 트랜스 행동치료를 통해 서서히 자신을 회복해 갔다.

상담자는 그녀에게 드럼과 같은  악기 배우기를 권했으며

댄스 클래스에 등록하게 하여 그녀가 즐거움을 찾아가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그녀는 요즘 바쁘다.

당연히 건강한 모습을 되찾아가는 과정에서 현재도 일주일에 한 번 씩 상담센터에 들러

자신의 일상을 보고하며 집중력 훈련과 학업에 대한 전략을 함께 세워간다.

내년 3월엔 학교로 돌아갈 것이다.

마침 아버지의 직장 문제로 그 가족은 지역을 옮겨 이사를 계획중이다.

새로운 곳에서 새출발을 하기 위해 그녀는 열심히 운동하고 춤을 추며, 그리고 공부를 한다.

지속적인 상담의 끈을 놓지 않고 그녀는 날마다 조금씩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되어가는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청소년의 집단따돌림의 문제는 생각보다 대단히 충격의 여파가 크다.

그러한 경험을 가진 사람은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악몽을 마음에 그대로 담아 놓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주변을 돌아보며, 우리간 잠시 방심한 사이에

내 아이가 부모가 모르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놓여 있지나 않은지 살펴보아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