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황혼을 맞으신 부모님들의 이혼관련 상담이나 의처증, 혹은 의부증 관련 상담이 많다.
이는 대체로 자녀분들이 부모님의 고통을 지켜보기 힘들어서 상담을 의뢰하는 경우인데
그분들의 이야기는 평생을 살아 온 회한들을 그대로 보여주어 상담자의 마음을 쓰리게 한다.
평생 남편의 의처증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때리면 맞고, 속이 상하고 억울해도 그냥 내 운명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한 평생을 살아오신 분들이어서 상담에 대한 의지가 약한 경우도 많다.
그러한 심리적 고통들을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문제가 개선될 수 있음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자신의 업으로 가슴에 담고 일생을 살아간다.
자녀들이 장성하고 그러한 부모님의 고통을 지켜보며 해결방법을 찾다가 결국 상담센터를
찾아 심리상담을 받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대체로 의처증이 흔한 경우이지만 때로는 의부증의 경우도 있다.
의부증을 가진 엄마가 일생 아버지를 학대하고 괴롭히는 모습을 지켜 본 따님이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사례도 더러 있었다.
그러한 경우는 아버지나 어머니 모두 힘겹고 고통스러운 상태이다.
의심을 하는 쪽도 의심을 당하는 쪽도 모두 피해자처럼 느껴진다.
그러한 증상이 시작되는 첫출발의 메카니즘은 대개가 비슷하지만 대개가 자신의 자존감이나 피해의식,
혹은 강박증이 만들어 낸 산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존중받고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본능이 있는 것이다.
그 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않을 때 우리는 심리적으로 방황하고 고통스러운 심리적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사례 역시 마찬가지이다.
서른 중반쯤 부터 심한 의처증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아버지로 인해 결혼을 한 이후에도 그로인한
정신적 충격과 공황상태를 가끔 경험한다는 30대 주부가 부모님을 모시고 왔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얼마나 부인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절규하듯 고백했으며,
아내인 할머니는 입을 다문 채 말씀이 없었다.
세상만사 말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체념한 듯 표정이 없는 얼굴로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구체적으로 누군가와 바람을 피는 장면을 목격했다면서 여러가지 정황을 줄줄이 말씀 하셨지만
할머니는 역시 묵묵부답인 것이었다.
할머니께 뭐라도 좀 말씀을 해 보시라고 하자, '말해 봤자 남의 눈에 우스운 사람만 될 것' 이라며 한숨만 내쉬었다.
할아버지를 잠시 밖으로 나가시게 하고 할머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의 소망은 그냥 어서 이 세상을 뜨는 것이라고 했다.
젊어서도 힘들었지만 나이 들어서까지 이런 생활을 한다는 것이 아들 며느리 보기도 부끄럽고,
사위나 딸에게도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자신의 삶 자체가 부끄럽다고 한다.
어서 죽어서 다음 세상에 태어나 그 때는 맘 편하게 한번쯤 살아보고 싶다고.......
할머니의 살아오신 세월을 공감해 드리자 갑자기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신다.
그리고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신혼시절 할아버지는 참 자상하고 착실한 남편이었다고 한다.
서른 중반에 할아버지께서는 직장에서의 사고로 인해 다리를 심하게 다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몇 년 동안을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시게 되면서 성격이 점점 난폭해지기 시작했다고.....
하루 종일 집안에 갇혀 지내시는 할아버지를 위해 할머니는 극진한 간호를 하고 재활치료를 도왔다고 한다.
재활치료를 돕는 과정에서 이웃집 어느 지인의 도움을 받아 병원을 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그분께 할아버지를 맡기고
잠시 바깥일을 보기도 했다고......
그런데,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그분께 역정을 자주 내었으며 고마운 마음에 식사라도 대접한 후에는 며칠씩 할머니를
들볶기 시작했지만 설마 그것이 의처증의 시작이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긴 세월이 지나면서 할아버지는 거의 회복이 되셨지만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변해있었다고 한다.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여러 직장을 전전하기도 했고,
신체적으로 약한 상태여서 예민한 성격을 드러내는 일도 잦아졌다고....
설상가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할아버지는 온갖 구실로 할머니에게 폭언과 폭력행사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무 어이가 없어 덤벼들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일은 더 커지고 집안 부끄러운 일 같아서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닫고 살기고 작정을 했다고 하신다.
때리면 맞고, 욕하면 욕을 듣고... 무저항정신으로 그냥 하루 하루를 지내신다고....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불쌍해서 이해하려 했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마져도 사라진지 오래라고......
할아버지의 말씀은 또 다르다.
할머니는 언제부턴가 자신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과는 이야기를 잘 나누고 좋은 낯을 하지만
정작 남편인 자신에게는 쌀쌀맞게 할 뿐만 아니라 늘 무시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고
자신은 너무나 오랜 세월을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참고 누르고 살아왔다고....
이러한 경우 1회 상담으로 결론을 얻기가 쉽지 않다.
부부상담이 시작되었다.
각자의 할 말들을 말없이 경청하고 공감해주는 것을 시작으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역할극을 시도했다.
연세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두분은 잘 따라와 주셨다.
그리고 시간선치료 기법과 하위양식바꾸기 작업, 그리고 심층심리를 치유하기 위한 트랜스 작업에 들어갔다.
총 5회의 상담회기를 통해 이 분들은 자신의 행복, 그리고 배우자의 행복에 대해 눈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랜 오해의 껍질을 벗고 새로운 시각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이다.
참 다행한 일이었다.
그러한 시간들을 통해 황혼의 노부부는 서로에 대한 새로운 사랑을 발견하고
비로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분들의 사랑이 날이 갈수록 빛나고 아름다운 결실로 열매 맺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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