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이 꼭 필요하다고, 반드시 심리치료를 받게 해 달라고 애절하게 요청해 오신 분은 30대 후반의 주부였다.
아이가 둘 있으며, 남편은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으며 성격도 온화하고 가정적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단 한 가지로 남편이 수시로 집을 떠나 가출을 하여 몇 달씩을 바깥에서 지낸다고 한다.
그럴 때 마다 아내나 아이들이 아빠를 찾아가서 사정사정해서 집으로 모시고 들어오는데
그런 남편은 일 년에 한 두번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채, 그냥 무의식적으로 가출을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가출을 하는 남편 자신조차도 자기가 왜 그렇게 집을 박차고 수시로 나가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남편의 말로는 회사나 바깥 생활은 괜찮은데 집안에만 있으면 불안하고 숨이 막힐 것 같아 힘들다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의 이러한 습관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에게 이 문제만 없다면 그로서는 흠잡을 것 없는 좋은 사람이기에 그 안타까움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과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게 하곤 했지만 크게 개선이 되질 않고 있다고 하였다.
상담실에서는 우선 남편이 상담을 받고자 하는 의향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았다.
가족이 아무리 간절히 원한다 해도 정작 당사자가 상담을 통해 도움받고자 하는 마음이 없고
상담에 대한 협조가 없다면 원만한 상담의 진행이 어렵고 상담의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담자의 상담에 대한 동기를 말하는 것이며
병원에서 말하는 환자의 투병의지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담자가 상담에 대한 동기가 없다면 마음으로 상담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진심어린 상담적 대화를 나눌 수 없을 것이며 변화나 개선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담자의 상담에 대한 협조가 없을 경우에 상담자는 그와 더불어 상담이 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하여
대화를 통해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상담자의 시간과 그에 따른 에너지 손실이 커지게 된다.
그렇기에 모든 상담에서는 가족이 아닌 내담자 자신의 자발적인 상담에 대한 동기와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 남편은 자기 자신도 스스로에 대해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그래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며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와의 상담이 이루어졌다.
먼저 내담자는 심리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검사 결과를 통해 봤을 때 그는 대단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와 불안관련 수치가 표준수치 보다 훨씬 높았다.
그는 한 눈에 보기에도 너무나 선량하고 따뜻한 인상을 보여 주었으나
내적으로는 아주 높은 스트레스와 불안심리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런 결과를 바탕으로 심리상담에 들어갔다.
상담자가 그의 불안과 스트레스, 그리고 가출과 관련된 기억들을 찾아내는 작업을 시작하자
뜻밖에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 관련한 기억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기억들은 그가 평소에 전혀 생각하지 않는 내용들이라고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성격이 대단히 차분하고 생각이 많은 분이라고 했다.
매사에 자녀들을 교육적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셨으며 근면 검소하고 성실한 분이란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그의 아버지에 대한 숨은 기억들은
숨 막힐 것 같은 불안감과 공포감이었다는 사실을 떠 올렸다.
그는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시험을 보거나 사소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아버지가 너무나 공포스럽고 무서웠다고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잘못에 대해 그 자리에서 즉시 훈육을 하시거나 체벌을 하지 않으셨으며,
그 문제에 대해 몇 날 몇 일을 심사숙고해서 아들을 불러 앉힌 뒤
여러 시간에 걸쳐 그의 잘못을 일일이 적은 노트와 함께 나무랐는데
그 긴 시간이 아들에게는 숨이 막힐 것만 같은 시간이었다.
그가 아버지의 말씀에 대해 조금이라도 자신의 생각이나, 혹은 그건 그렇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게 되면
아버지는 또 다시 며칠이 지난 후 그 일에 대해 꼼꼼하게 재론하는 식으로 자식을 교육하곤 하셨다.
그는 자신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주의한 행동이나 잘못 된 결과에 대해 얼른 매를 맞고 싶었지만
3~4일, 혹은 일주일이 넘도록 애가 타는 심정,
불안한 심정으로 아버지가 부르기를 기다리는 날들이 엄청난 고문 같았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아버지는 사업을 실패하였고
그에 따라 집안은 경제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아버지는 그 문제가 해결이 되기까지의 2년여 시간동안을 거의 입을 다물고 계셨다고 한다.
집안이 기울고, 아버지가 입을 다물고 지내는 그 긴 세월동안 그는 한 순간도 마음이 편안한 적이 없었으며,
언젠가, 어디선가 아버지가 그를 불러서 앉히며 집안의 몰락에 대해 그에게 추궁할 것만 같은
착각 속에서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그는 날마다 학교를 마치고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이 지옥보다 더 힘겹게 느꼈으며
그 2년 세월이 가시방석위에 앉은 것 보다 더 힘들었다고 하였다.
내담자는 스스로 뭔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 뭐라고 말 한마디를 건네기도 힘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그렇게 하루 하루를 보내는 숨막히는 순간으로부터 탈출을 꿈꾸었는데,
그 탈출이란 곧 집을 나가는 것이었다고 한다.
집안을 벗어나고, 학교를 가고 친구를 만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맑아지곤 했다.
그는 대학을 다니면서도 너무나 암울한 순간들을 보냈기에
차라리 군대에서 지낸 군생활이 그를 자유롭게 하고 마음의 기쁨이나 여유가 생기는 시기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 취직을 하여 결혼을 하는 과정에서
다행스럽게 그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결혼과 동시에 분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하던 그가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면서부터는 혼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됨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나 무의식 속에 각인된, 집이라는 곳이 주는 ‘감옥과 지옥같다’는 느낌은
그의 의식수준에서는 도저히 눈치 챌 수 없는 갇힌 정서였다.
그 갇힌 정서가 그가 결혼하여 독립하는 순간부터 무의식적으로 표출이 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만나면서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자신 속에 그러한 정서와 억압이 꽁꽁 얼어붙은 채 존재하고 있다는 것 역시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최면치료 작업을 통하여 잠재의식 속에 갇힌
그 억압된 정서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그는 이제 온전한 평화를 누리게 된 것 같다고 한다.
마음의 세계는 참으로 묘하다. 내 속에 존재하는 무수한 나를 만나기가 이렇게 어렵고 긴 시간이 걸린다.
그러한 자신을 이해하고 존중해 주며, 그의 상처를 다독여주는 아내를 향해 그는 뜨거운 감사를 전했으며
이제는 자신이 만든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돈독히 잘 지켜나가는 책임감 있는 가장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지옥같은 느낌으로 다가 오던 그 집은 예전에 그가 힘겨워하던 아버지가 계시는 곳이 아님에도
그는 집에 대해서 예전과 같은 정서로 대하고 느꼈던 것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처럼, 자라를 보고 한 번 놀란 가슴은
언제나 자라 비슷한 솥뚜껑만 보아도 놀라듯이,
그는 집이라는 울타리를 아버지와 함께 묶어 지옥과 같은 것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흔히 가출과 관련한 단어들은 아직 미성년자와 관련하여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더러는 어른이 되고,
장년이 되어도 어린 시절의 힘든 기억으로 저장된 과거의 프로그램은 여전히 그 시절,
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현재순간까지 머물며 우리를 힘들게 할 수 있다.
앞의 내담자는 이제 완전히 자유로운 행복을 누리며 잘 지낸다고 한다.
그 부인은 가끔씩 안부전화를 통해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감사의 안부를 전해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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