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례

불임을 불러 온 생각

설기문 2007. 10. 10. 13:06
 

결혼 8년차의 부부가 찾아왔다. 아이를 갖기 위해서 그동안 병원을 찾아다니며 온갖 검사를 다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자 혹시 심리적인 요인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상담을 의뢰했다고 한다. 신체적 이상이 없는 젊은 부부가 아이가 생기질 않으니 부모님들이 많이 걱정을 하고 계시는 듯 했다.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트랜스로 유도하자 내담자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이를 원치 않는 마음을 드러냈다. 그녀는 어릴 적에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자신이 좋은 엄마가 될 수 없다는 제한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쩌면 자신과 같은 상처를 아이가 갖게 되길 피하는 방법으로 무의식이 작용했던 것 같다.


그녀는 5남매 중의 중간이라고 했는데 아버지가 워낙 술을 많이 드시고 생활력이 없었던 관계로 어머니가 시장에서 고단한 일을 하셨는데 늘 피곤한 생활에 절어 짜증이 많으셨다고 했다. 생활고에 찌들린 어머니는 삶이 너무 고단했던 탓에 아이들이 조금만 잘못 하거나 실수를 해도 불같이 화를 내시고 심하게 때리기도 하시곤 했는데 내담자는 일방적으로 맞으면서 저항할 수 없는 자신의 상태가 때로는 억울한 생각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자신의 잘못으로 매를 맞을 때 보다 어머니의 감정적인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억울하게 맞았던 기억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 마다 자신이 어른이 된다면 결코 자기 엄마와

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수많은 다짐을 하곤 했었는데 그녀가 결혼을 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룬 후에도 잠재의식에 남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그 상처는 ‘우리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아’하고 외치며 짙게 깔려 남아 있었던 것이다.

늘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자신의 근원적인 존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그녀를 아이가 생기지 못하도록 저항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러 갈래의 마음들 (분아)을 하나하나 들춰가면서 정리 작업을 하는 시간을 오랫동안 가졌다. 그리고 고단하고 외로웠을 그녀의 어머니의 입장에도 서 보게 하면서 엄마를 바라보는 시각을 원망스러움 외에도 여러 각도에서 다양화시킴으로써 객관적인 감정을 느껴보도록 유도  했는데  한순간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떠나 어머니의 아픔과 고단한 삶의 무게에 대해 아픔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오열을 했다.  어머니도 힘들었구나, 너무 고단 했구나 ........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면서 그녀는 어머니를 새롭게 인식했다.

연민의 정을 가득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런 감정적인 처리들이 그녀가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강박증,  그리고 부모에 대한 원망스러운 마음까지를 새롭게 바꾸어 주었다.


내담자가 살아오는 동안 겪었던 외로움과 쓸쓸함을 아이를 가짐으로써 함께 나누고

동시에 누군가에게 사랑을 충분히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랑의 대상을 가질 수

있음에 대한 기대감도 키우도록 유도했는데 그녀는 다행히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엄마가 되어보고 싶다고 했다.

자기의 생각을 또 하나의 자신에게 다정하게 속삭이듯 이야기하게  하자 그녀는 울먹이며 좋은 엄마가 될 것을 약속했다.

결과적으로 볼 때 그녀는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부모에 대한 원망과 분노와 책임감들이

무의식적으로 아이를 갖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굳어져가고 있었던 듯 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흔적을 남긴다고 한다.

그래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나 보다.

자라와 솥뚜껑은 엄연히 다른 물체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 놀란 가슴은 비슷한 형상만

보아도 최초의 놀랐던 기억속으로 단번에 우리를 몰아가기에  우리는 아무 준비없이 무의식이 착각하고 보내주는 신호에 놀라고 마는 것이다.


상담을 마치고 남편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머지않아 이쁜 아가가 태어나서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고귀함을 그녀가 경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었다. 지금쯤 그녀는 고단한 엄마를 찾아가서 따뜻한 말로 정성이 담긴 밥상을

차려 친정엄마를 위로하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