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은 과연 없는가? 아니면 있는가?
내가 최면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지금부터 20년 정도 전의 일이었다.
내가 맡고 있는 대학원 수업에서 특별 수업의 하나로 최면을 잘 하신다고 하는
상담심리학 과목 수업 시간에 관련있는 내용이기에
학교 선생님을 초빙하여 최면으로 학생들의 생활지도와 상담을 하는 사례를 들었을 때였다.
처음 최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상담교수이자 전문가인 내가 하지 못할 상담을 저 선생님은 나보다 더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상담으로 박사를 했는데, 저 선생님은 평교사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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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최면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가졌고 또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찾았다.
하지만 지방대학의 교수로 있던 나로서는 모든 것이 서울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교육, 문화적 풍토에서 최면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캐나다로 객원교수 발령을 받았다. 캐다다에서 1년을 지내는 동안에
나는 새로운 배울 거리를 찾아서 NLP와 최면 공부를 하였다. NLP는 캐나다에서
공부했고 최면은 내가 있던 곳에서 가깝게 소재하고 있던 미국땅으로 가서 공부하였다.
마침 그러한 인연이 허락되었던 셈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그때 (NLP와 함께) 최면을 제대로 배운 덕에 지금까지
최면을 잘 활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최면을 가르치면서 내가 경험하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한 가지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최면에 대한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정식으로
최면을 배우기 전에는 최면에 대한 편견을 많이 갖고 있었다. 특히 프로이드레서
비롯되는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는 동안에 프로이드식 관점과 정서에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최면이라고 하면 왠지 프로이드가 버렸던 '별 볼일 없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최면에 걸린다는 것은 잠을 자는 것일텐데.. 그 잠자는 동안에
어떻게 한단 말인가?
또한 나의 무의식이 나온다면 그 속에 무엇이 있을까? 괜히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곤란한' 무의식은 없을까?
이와 같은 편견에도 불구하고 막상 최면을 공부해본 결과 진정한 치료적 효과를
볼 수 있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됨을 깨달았다.
그런데 최면 상태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 또한 만만찮다.
지난 주말에 방영되었던 MBC '무한도전'에서 최면이 소개된 후에
시청자들의 관심과 문의가 폭증했는데, 그 중에는 최면에 대해서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즉 방송에서 나온 그 최면은 혹시 짜고 한 것은 아닌가?
정말로 최면이 그렇게 쉽게 걸리는가? 그리고 그렇게 시끄러운 상황인데도
어떻게 최면이 걸리고 또 최면상태가 유지될 수 있는가? 팔은 정말로 그렇게 굳고
움직이지 않는가? 물레방아는 그렇게 눈을 뜨고도 계속 돌아갈 수 있는가...? 등의
질문들이 끊이지 않았다.
모두가 최면에 대한 오해때문에 제기되는 의문들이다.
결론적으로 전혀 짜고 한 것이 없고 사실 그대로이다. 전체 내용에서
사실을 왜곡할 만한 그 어떤 편집도 없음을 밝힌다.
하지만 사람들은 최면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최면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때문에 계속적인 질문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차라리 "최면은 없다"고 선언해버리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실제로 나는 최면 수업시간에 "최면은 없다"고 말하곤 한다.
최면에 대한 개념은 광의의 개념과 협의의 개념이 있다.
협의의 개념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최면이다.
잠을 자며 의식이 없어지며 또 최면사가 시키는대로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는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뭐 그런 것 말이다.
하지만 광의의 개념은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가 최면이라는 개념이다.
책을 읽으면서 시간가는줄 모른다든지,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갈 때
멍~ 하니 딴 생각을 하느라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친다든지,
재미있는 TV나 영화를 보느라 휴대폰 벨 소리도 못듣고 시간 감각을 잃는다든지
하는 일들은 모두가 일종의 최면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각종의 습관적 행동이나 반복적으로 하는 습관적인 사고 또는 감정적 경험
이 모든 것들도 일종의 최면적 반응이다.
운전을 하는 행동, 술이나 담배를 피는 행동들에서도 우리는 최면적 속성을 본다.
이럴 때 기존의 협의의 최면개념과 구별하기 위해서 트랜스란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서 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때까지 우리는 늘... 거의 습관적인 행동을하고
무의식적인 반응을 하면서 생활한다..이 모든 것은 어쩌면 내가 의식없이 하게 되는 최면적ㄷ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다.
넓은 의미로 볼 때 문화도 일종의 최면이라고 볼 수 있다. 일정한 공간과 시간적 상황에서
기대되는 인간의 행동 규범과 관련된 문화라는 것, 따지고 보면 최면적 현상이나
조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우리는 거의 최면적으로 그 습관적 행동을 의식없이
별 생각없이 하게 된다.
그렇게 본다면 분명히 "최면은 있다."
문제는 그 최면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배워야 하고 익혀야 할 것이 아닐까?
그것을 위해서 최면과정이 있고 강좌가 있는 것이다.
"최면은 있다." 이 최면을 잘 활용하여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면
최면이야말로 참 좋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