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Rapport)란 말은 공감하는 정서를 의미한다.
그리고 라포란 바람직한 의사소통에서의 첫 단계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의사소통을 하는 능력을 타고났지만 전달하는 말이 잘못 이해되는 수가 있다.
우리는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말했을 때 뜻밖의 반응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 상대의 기분을 거슬리거나
선의로 도와주겠다고 제안했다가 ‘참견하지 마라!’는 식으로 거절을 당하기도 한다.
제안을 한 사람에게는 그 의도가 분명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일은 반대로도 일어난다.
상대방이 뜻하는 의미를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하자.
나는 한 시간이면 끝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그는 반나절을 생각하고 있었다.
인간적인 대화는 각각의 상징에 대한 정해진 해석이 있는 모르스 부호와는 다르다.
거리에서 만난 두 명의 정신분석학자에 대한 우스개 소리가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 “잘 있었나? 그동안 어떻게 지냈지?”
그러자 다른 사람이 생각한다: “어떻게 지내다니.....?
이 말은 정신분석적으로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모르겠군.”
우리는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대해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의사소통 하는 일에 능숙하고 창조적일 뿐 아니라
받아들이는 일에도 능숙하고 창조적이다.
우리가 오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너무 많은 미묘한 의미를 전달하거나 추론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말들을 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우리가 의사소통을 한다고 할 때 그 목표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가 의사소통에 있어서 의미를 제대로 전달했는지의 여부는
상대방이 그 메시지를 제대로 받아들였는지의 여부와 관계된다.
송신자는 자신이 보내는 신호가 상대에게 실제로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는지 알 수 없다.
그는 단지 의미를 표현하고 싶을 뿐이다.
의사소통에서 실패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내용이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전달될 수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이 보이는 반응을 보고서야
다음에는 어떤 내용으로 의사소통 해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보이는 반응은 다음 의사소통의 방향을 결정짓는 방향타가 되며 스승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잘 설명해주는 NLP 전제조건의 하나는 다음과 같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를 알려면 상대방이 보이는 반응을 보아야 한다.”
위의 NLP 전제조건에 따른다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가?
오해는 어떻게 해서 생길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오해를 막을 수 있을까?
오해를 막기 위해서는 상대의 마음을 읽는다거나 어떻게 되기를 바라기보다는
상대방이 보이는 반응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주의를 제대로 기울인다면 엉뚱한 길로 빗나가서 심각한 결과가 일어나기 전에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다.
제대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특히 기업 상황에서 중요한 일이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상사는 부하직원들로부터 반감을 사지 않고 의욕적으로 일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상품의 가격과 양에 관한 의사소통이 잘못 이루어지면
막대한 재정적인 손실이 초래될 수 있는 회사나 기업 상황도 있다.
세일즈와 상품 설명을 제대로 해야 하는 상황도 얼마든지 있다.
이러한 모든 경우에 정확하고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저자의 친구 한 사람이 컴퓨터 세일즈를 하는데
어느 중요한 고객을 만나기 위해 홍보용 자료를 철저하게 준비했다.
그는 자신이 세일즈 하는 컴퓨터 시스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고객이 그 시스템의 우수성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컴퓨터를 당장 구입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고객에게 설명만 잘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설명을 하기 시작한지 몇 분 후에 그 고객의 눈이 졸음으로 가득해지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고객의 눈을 보고는 그런 식으로 계속하다가는 물건을 팔지 못하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때 마침 책상에서 종이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그는 궁지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는 고객에게 사과를 하면서 종이를 집어 들고나서 말했다:
“제가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죠? 아, 그렇군요.... 손님께서는 이 컴퓨터로 무엇을 하고 싶으시죠?”
그 고객은 많은 이야기를 나눈 끝에 그 컴퓨터를 샀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이 정말로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떨어진 종이를 집어든 후에 조금 전과는 다른 방법을 시도함으로써 래포를 형성하고
또 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이 원리는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하다.
여러분들은 말다툼을 하면서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아, 아니지. 다시는 이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과거 어느 때와 비슷하게 불길한 예감을 느끼면서 오해를 빚어내는 그런 말다툼은
거의 미리 각본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 래포를 형성하고 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기존의 방식과 달리 처신한다면 어떻게 할 필요가 있을까?
분명히 우리는 과거의 실수 경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탁월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실수로 부터 배우는 것 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원하는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과거의 경험으로부터도 배운다는 것을 포함한다.
당신은 어떻게 함으로써 상대방으로부터 원하는 반응을 얻을 수 있었을까?
그런 경우에 당신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동을 취했느냐는 점보다는 어떤 식으로 생각했는지를 기억해보자.
당신이 처음에 생각했던 것이 옳았는가?
아니면 나중에 그 생각을 다시 조정해야 했는가?
만일 처음 생각이 옳았다면 당신은 그 옳은 생각과 결정을 어떻게 했는가?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서 A라는 의미로 말했는데
상대방은 그것을 다른 의미 즉 B로 받아들이는 반응을 보일 때 어느 쪽도 틀렸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스스로의 의사소통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이 곧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마치 희생양을 찾는 것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처럼,
우리는 흔히 의사소통에 있어서 누가 실수를 했는지 찾아내서 그를 비난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누구든 인간이라는 이유로 비난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비난을 통해서는 학습이 일어나기가 어렵다.
우리가, 자기 자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비난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때
좀더 열린 마음으로 학습하게 되고 호기심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안달하거나 긴장하지 않고 좀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예측할 수 없는 세상살이를 하는 가운데 불안을 느끼곤 한다.
사람들은 ‘아마도’나 ‘글쎄’와 같은 애매한 대답보다는
‘그렇다’ 또는 ‘아니다’와 같은 확실한 대답을 듣기 원한다.
그러나 확실한 대답을 얻기란 어렵고 보통 값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우리가 기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변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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