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심리마당/빙의치료·전생치료

전생치료와 빙의치료의 현장에서

설기문 2008. 12. 8. 16:40

 

 

최면을 통해 전생치료라는 이름으로, 혹은 빙의치료라는 이름으로 상담을 해 온지도 십수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전생치료나 빙의치료라는 말 보다는 전생치유, 또는 빙의치유라는 이름이 더 친근하다.

치유와 치료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강의시간에 수시로 언급하게 되는데

나는 언제나 치료라는 말 보다는 치유라는 말이 더 편안하다.

 

전생이라는 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갖는 관심과 흥미,

빙의라는 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갖는 두려움과 호기심은 오래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무수한 질문들 중의 하나가 정말 전생이 있는가? 하는 것과

내게 혹시 빙의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에 대해 막연한 호기심이나 막연한 정의를 내리면서 밀어내기엔 궁금하고

가까이 하기엔 부담스러운 심정을 갖는 것 같다.

 

그럴 때 마다 늘 하던 말을 또 할 수 밖에 없다.

전생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전생의 유무와 상관없이 우리들 내면에 가라앉아 영향을 주고 있는 잠재의식 속의

프로그램들을 찾아내다 보면 적절하게 이름 붙이기가 어려운 상황들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그러한 상황들에 대해 편의상 전생이라 이름지어보자.

 

그리고 빙의 역시 마찬가지이다.

무수한 빙의 해결기법이 있지만 그건 각자의 능력이라고도 볼 수 있다.

법력이 높으신 스님들은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빙의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경우에 따라서 굿을 하거나 푸닥거리를 통해서도 빙의를 물러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백인백색이라고 할 수 있듯, 빙의의 해법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러나 나는 한 사람을 바라보는 일만으로 그의 내면이 무엇이 존재하는지를 알아내는 영능력자가 아니기에,

내가  배우고, 익히고, 십수년이 넘도록 해 오는 방법을 통해 날로 새로운

정보를 얻어내고, 경험을 통해 새로운 기법들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 설기문은  개인적으로 닥터 볼드윈을 존경한다.

빙의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고, 또 최근의 빙의관련 자료들을 챙기다보면 볼드윈박사는 휴머니스트이며

그는 빙의관련한 각종 사례들을 통해서 그의 논리나 이론, 그의 상담법들이

대단히 학문적이고 논리적이며 체계적인 심리상담 체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과 빙의에 대한 애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날이 갈수록 그의 학문적 깊이와 인간애에 매료되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