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심리마당/빙의치료·전생치료

전생업장과 빙의의 문제 - 빙의치료 수업에서의 사례

설기문 2008. 10. 7. 07:11

지난 일요일 (08년 10월 5일) 빙의치료 수업시간에서 우리는 대단한 장면들을 목격했다.

 

20여년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몸의 고통으로 힘들어 하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다양한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해결되지 않고 결국은 인연의 끌림으로 빙의수업에 까지 참여하게 된 한 스님의 이야기다.

참여자들은 모두 그 긴 스토리를 들어서 알겠지만 일일이 이곳에서 그 사연을 옮기기에는 힘이 든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의 문제도 있고 스토리도 길고 해서 말이다.

 

하지만 현대의학으로 전혀 진단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치료 또한 되지 않는 스님의 몸의 고통 앞에서 모두들 안타까움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다. 세상에, 몸의 오직 오른쪽 반만이 (성기를 포함하여) 고통스럽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갖고 빙의치료 수업에 참여하였고 또한 모든 체면이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공개치료에 자원을 하신 스님.... 모두들 그의 말에 수긍을 하면서 함께 안타까움을 느낀 상황에서 우리는 모두 한 마음이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스님은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서인지, 한꺼번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는 것에 대한 부담이나 신경쓰임 때문인지, 아니면 최면에 대한 많은 너무 많은 기대때문인지는 몰라도 최면에 깊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몇 번에 걸친 시도를 해봤으나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날은 우리의 유능한 도우미들의 활약이 단연 빛을 발하였다.

 

빙의치료 수업 사상 처음으로 공개적인 집단작업이 이루어졌다. 흔히 상담이나 심리치료에서 집단상담 또는 집단치료를 하긴 한다. 사실 나의 원래 주 전공 분야가 바로 집단상담이란 것을 아는 사람들은 과거에는 많았지만 요즘은 드물 것이다. 그렇다. 나의 주 전공이 바로 집단상담, 집단치료이기 때문에 나는 집단 장면에 능하다. 그래서 자연스레 집단빙의치료 장면도 연출할 수 있었다.

 

몇몇 회원님이 앞으로 나와 스님 대신에 ‘대신 울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 동참함으로써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스님 대신에 스님의 빙의 상태를 읽고 스님의 전생을 읽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미국의 유명한 영능력자인 에드가 케이시가 다른 사람들의 전생을 읽었다는 그 리딩(reading)이 우리 속에서도 시작되었다.

 

우리 아카데미에서는 가끔 난치병 환자 또는 심한 빙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이런 집단작업과 리딩작업을 하긴 한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수업 장면에서 이런 작업은 처음이다. 그러나 이런 작업은 대단히 의미있는 작업이고 가치 또한 크다.

 

이날 작업에서, 주인공인 스님은 전생에서 너무도 잔인한 죄를 지었음이 밝혀졌다. 다시 말해서 업장이 너무도 두터웠단 말이다. 그런 것들이 모두 극심한 빙의를 불러들였다. 물론 그 어떤 것도 객관적으로나 물증으로써 확인하고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반드시 ‘맞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무의식 속에서 그러한 정보가 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비록 그것이 리딩으로 밝혀진 것이라 하더라도....

 

여러명의 도우미들이 한결같이 보거나 떠올린 것은 스님의 전생, 특히 일본 군인으로서 200여년 전의 조선인들에게 너무도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살육과 도륙을 재미삼아 일삼으면서 일가족을 몰살하고 그것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과정.... 소름이 돋을 정도로 리얼하게 묘사된 그날의 풍경... 그렇게 당한 당시의 한많은 영혼들의 절규와 원한에 사무친 통곡의 소리.... 강의실이, 아니 건물 전체가 떠나갈 정도로 크고 리얼하게 터져 나왔던 현장의 소리들이었다. 여기 저기서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애절한 부부애... 자식과 남편을 그리워하면서 가슴찢어지는 눈물을 흘리던 한많은 한 조선 여인의 모습도 보았다.

천추의 한으로 도저히 저승을 가지 못하고 처절한 복수를 다짐하고 이를 가는 무수한 영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록 그것이 간접적인 방식이었고 또 리딩에 의한 것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숙연해졌고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나 또한 진행하는 가운데 몇 번이나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넘겼다.

 

비록 완성된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각본없는 즉석 드라마, 그것도 대하드라마가 그렇게 연출되고 있었다.

특히 사죄하고 용서를 비는 상황에서 내가 주인공 대신에 너무 목소리를 크게 하고 목을 많이 씀으로써 목이 쉬는 상황까지 가버렸다. 용서를 빌고 용서하는 과정... 이것이 전생치료와 빙의치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대목이고 가치있는 세리머니다.

마지막까지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들에게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고 귀중한 학습의 시간이었으며 또한 큰 교훈의 시간이었다. 삶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병에 대해서....

 

함께 참여해준 도우미 여러분들, 그리고 마음으로 참여하고 공감하고 또 눈물흘려준 많은 우리의 선량한 관객-수강생 여러분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너무 큰 한을 품고 높은 곳으로 가지 못하고 있는 더 많은 불쌍한 영혼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보낸다. 언젠가 완전한 해원을 하여서 좋은 세상을 가기 바란다.

 

그날의 진행자로서 생각나는 대로 몇 자 적어보았다. 혹시 다른 회원님들께서 다른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보태주셔도 좋다.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 다만 스님의 인적사항이나 프라이버시 관련되는 것만 빼고...

 

위에서 간략히 소개한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빙의의 문제는 개인의 전생에서도 많이 비롯된다. 전생에서 남에게 큰 고통을 준 사람들... 그 전생의 업보와 복수관계로 인해서 현생에서 빙의의 문제로 시달리게 되는 사례들을 나는 많이 보아왔다. 우리의 삶의 연속성을 생각할 때 전생의 문제와 현생의 빙의문제 또한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잘 살아야 한다. 남에게 아픔과 고통을 주는 삶을 살지 않아야 한다. 비록 우리가 알게 모르게, 비록 의도적으로는 아닐지라도, 물론 의도적으로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삶의 과정에서 아픔을 주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경우는 많이 있다. 그런 경우가 있다면 마음으로 되돌아보면서, 이번 기회를 빌어 앞으로는 좀 더 남에게 기쁨과 희망, 그리고 위로를 주는 삶을 살게 되기를 기원해보자. 그것이 진정으로 전생치료와 빙의치료를 공부하는 의미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