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례

청소년들의 방황, 자신은 부모님의 실패작

설기문 2012. 1. 5. 11:42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

그는 분노로 가득한 눈빛이다.

대단히 공격적이고 방어적이기도 하다.


그 학생의 부모님은 아이가 수시로 집안에서 공격성을 띠는 바람에 놀라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툭하면 주먹을 내두르기도 하고

자잘한 물건들을 집어 던져 부셔버리도 한단다.

학교에서는 대체로 잘 지내지만

친구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며 대체로 학교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는 아이들 몇몇과만 지낸다고 한다.

부모로서 걱정이 많이 되며

학업 성적 역시 맘에 들지 않는다는 말씀도 하신다.


유명과외 교사를 모셔다 특별하게 관리하지만 

성적은 늘 중위권을 헤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이신다.

'공부를 왜 못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세상에 공부 같이 쉬운 것이 어디 있느냐?'

'그러게 초등학교 때 부터 온갖 정성을 들이는 것이 아니었다'

'머리가 그다지 영리하지도 않은 아이에게 너무 많은 공을 들였다'

부모님은 담담하게 이런 이야기를 상담자에게 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장 좋다고 알려진 명문대학 출신이며

특별히 엄마는 미국유학파이며 그마져도 명문대학 출신이라고 한다.

두 분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전문직에서 빛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분들이기도 하고....

엄마가 박사학위를 얻기 위해 유학을 가 있는 동안

아들은 바쁜 할머니와 성의없는 도우미 아줌마의 손에 길러졌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학생과 둘이 나란히 앉았다.

표정을 살펴보니 대단히 화가 나 있어 보이고 몇 마디 말을 걸어봐도 방어적이다.

말을 하는 것 조차도 귀찮아하고 경계하는 빛이 역력하다.

비록 부모님에 의해 상담을 받으러 왔지만 나는 전적으로 학생의 편이며

그의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려고 한다는 말을 건네자 그는 반반의 의심을 가진 채

대화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는 늘 공부와 능력만을 강조하는 부모가 싫다고 한다.

자신의 친구를 비하하고 격하시키는 엄마도 싫다고 한다.

자신이 공부를 잘 해서 좋은 직장을 얻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게 된다면 그건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며

자신은 어떻게든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지 않을 결심을 했다고 한다.

또한 미술을 좋아하고 그림감상을 좋아하는 그에게 부모는 공부만을 강요한다고 한다.

의과대학과 법대 중에서 선택하라는 강요를 아직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공부를 잘 못하니 집안의 애물단지이고 망신스러운 존재라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부모의 의도가 왜곡되게 전해지긴 했겠지만 

듣는 나는 가슴이 아프다.

길고 긴 시간,

수차례의 진지한 심리상담을 통해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부모님을 설득하고 아들의 입장을 전하는 일은 아이를 설득하기 보다 더욱 힘들었다.

결국,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음을 인식하고 그 두 분은 마음을 비웠다.


아들을 상담 받게 하기 위해 찾아 온 그분들은 결국 가족치료로 상담을 종료하게 된 것이다.

청소년 상담을 하면서 아직 어린 그들의 슬픔과 현실은 냉혹하고 기댈 곳이 없음을 자주 맞닦뜨린다.

무조건 믿어주고 신뢰해주고 격려하고 응원하는 부모님의 모습은 점점 더 만나기가 어렵다.


심리치료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

타인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갖기 어려운 현실은 이 겨울 무수한 학생들을 더욱 더 떨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나날이 들려오는 청소년들의 학교와 사회의 고립,

학교폭력과 집단따돌림의 문제는 단순하게 어느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님을 다시금 확인한다.


부모님은 나를 잘 못 낳은 사람들이라고 했던 

그 학생이 결국은 화해를 통해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듯이 

이땅의 어린 청춘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이라 여길 수 있는 사회환경이 조성되길 기도한다.